화월재이 해리포터 AU-꽃










 닙에 가득찬 잉크가 후두둑, 쏟아졌다.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좌우로 움직이던 깃펜이 힘없이 양피지 위로 떨어진 것은 동시였다. 애써 한 숙제가 검게 번져 쓰지 못하게 되어버릴 때까지 화월은 넋을 놓고 눈동자를 돌리지 못했다. 노오란 시선의 끝엔 눈꽃을 닮은 하이얀 부엉이의 깃털이 얌전히 나무로 된 책상의 단면 위에 놓여 있었다. 결국 옷의 소맷단까지 잉크가 번지고 나서야 화월은 퍼뜩, 시선을 내렸다.


 “아, 이거 못쓰겠네.”


 벌써 여섯번째였다. 숙제를 망친 것이 세었던 횟수로만 여섯이라는 뜻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숙제를 생각하며 아픈 머리를 감싸쥐었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것까지 치면 아마 두 손을 다 꼽고도 모자랄 것이다. 이게 다 저놈의 깃털 때문이다. 애먼 깃털을 노려본 화월은 울음을 삼키며 새 양피지를 꺼내고 엎어진 잉크를 닦았다.


 하지만 여지껏 되지 않던 것이 몇 시간을 더 준다고 해서 될 리가 없었다. 숙제 한 번, 깃털 한 번, 닙에 잉크를 채우고 다시 깃털 한 번. 도무지 더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화월은 새로 꺼낸 종이의 반도 채 채우지 못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아, 정말. 한탄 섞인 숨이 새어나왔다. 머그컵 가득 따라두었던 커피를 연거푸 들이키고, 늘어놓았던 짐을 정리해 제 침대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왜 벌써 와? 숙제 한다더니.”


 동급생의 질문을 손짓 몇 번으로 가볍게 넘기고 길게 허리를 뻗대며 엎드려 누웠다. 눈 앞에 둥둥 떠있던 깃털은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더니 이내 베갯머리에 너울너울 떨어진다. 화월은 손가락으로 깃털 끝을 잡고는 빙글 돌려도 보고 가만히 내려다보기도 하며 눈을 깜빡였다. 앙 다문 입술 끝이 조금 올라가는 것 같기도 했다.


 신데렐라의 마법처럼. 유리구두도 아니고, 깃털이 뭐야.


 괜시리 자리에 없는 이에게로 탓을 돌렸다. 하여간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안된다. 어줍잖게 아는 척을 했다가 마음만 심란해졌다. 함 재이. 와중에도 되뇌인 이름 석 자에 투덜거리던 속에서 열이 났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가면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던 눈이 새카맣게 맑아서, 그게 이리도 기억에 남는 것일까. 아니면 혼혈인 주제에 썩 좋은 실력을 뽐내며 씨익 웃던 그 얼굴이 여즉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울렁거리는 가슴께를 지긋이 누르며 속으로 열을 반대로 센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말처럼 진정하자고, 차분히 생각해보자며 길게 숨을 쉬었다.


 착 가라앉은 머릿속은 고장난 필름 마냥 같은 날의 영상을 돌리고 또 돌렸다. 가깝게 맞붙던 숨이라던가 퍽 향긋하던 체취 같은 것들을. 고 작은 깃털에서 꼭 사람의 체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숙제도 망쳤는데 잠까지 설칠 순 없다며 깃털을 콱 쥐었다, 혹여라도 깃이 상했을까 슬그머니 펼쳐보는 양이 우스웠다. 마른 침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사위가 검어진 시야에 붉게 파인 드레스가, 하이얀 깃털과 새카만 눈동자가 어른거렸다.

 뒤숭숭하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새벽녘이면 범람하던 감정의 파랑 또한 밤의 냉기와 함께 쓸려 내려갔다. 퀭한 눈을 부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또 잠을 내리 설치고 말았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펴자 옆 침대에서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별일이네. 어제 일찍 들어왔잖아.”


 어려서부터 컨디션 관리를 중시하던 화월이었다. 아프거나 피곤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실리와 일의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어머니의 아래에서 늘 듣고 자란 말이기 때문이었다. 며칠간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것을 알고있다는 듯 날아든 말이 정곡을 찔렀다. 화월은 괜히 큼큼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으쓱해보이고 말았다.


 “꿈자리가 사나워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같은 사람과 같은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는 꿈이라니, 여즉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잠에 푹 들 수 있는 마법약이라도 만들어줄까? 짐짓 걱정스런 말에 화월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여간 슬리데린에 어울리지 않게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렇게 순해 빠져서야. 투욱, 말을 흘리면서도 친우를 보는 눈에 일순 뜨끈한 감정이 서렸다. 시원한 물이면 돼. 말갛게 눈매를 휘어접는 웃음에는 쉬이 드러나지 않는 본심이 섞였다.








 퀴디치 경기가 곧이었다. 퀴디치 경기는 호그와트에서 매년 열리는 큰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기숙사 대항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합날이 다가올 수록 기숙사끼리의 견제도 심해지는데, 개중에는 후플푸프의 실력 좋은 주전 수색꾼에 대한 이야기 또한 종종 화두에 올랐다. 화월은 눈에 띄게 소란스러워진 복도를 걸으며 들리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다.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말을 넘기며 시선을 돌렸지만 익숙한 이름이 나올 때면 쫑긋 세운 귀 끝엔 늘 발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실력 하나는 좋다더라, 하면 입가가 간질간질 하다가도 혼혈이네 어쩌네 하는 소리가 들리면 지팡이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우스운 일이었다. 뼈 끝까지 순혈주의인 저가 반응할 곳은 거기가 아니었다. 짝, 소리가 나게 제 뺨을 치곤 고개를 털었다. 생각보다 크게 난 소리에 옆에서 화들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 묻는 말이 들렸다. 


 “야, 야, 서화월.”


 “어?”


 그제야 고개를 들자 무언가 건수를 잡았다는 눈빛의 지후가 시야에 들었다. 무슨 일인데. 히죽히죽 웃는 양을 보니 벌어지려던 입이 꾹 닫혔다. 찬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비웃었었는데, 이제와 같은 명목으로 덜미를 잡힐 순 없었다. 일방통행이란게 이렇게 답답할 지 몰랐다. 천하의 김지후가 짝사랑이냐고 깔깔대던 과거의 제 목을 콱 쥐고 싶었다. 아니, 사랑이라니. 방금 사랑이라고 했나? 어림 없는 소리. 말도 안된다, 정말 말도 안,


 “뭐야, 왜 대답은 없고 혼자 그래. 진짜 어디 아파?”


 지후는 끙끙대며 머리를 쥐어뜯는 손을 잡아챘다. 뺨이며 귓불 따위가 싯붉게 익은 얼굴이 낯설었다. 근래에 화월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기숙사에 퍼진지 오래였다. 그래봐야 숙제가 많아져서 피곤해보이는 거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정도가 심했다. 지후는 영 이상하단 눈으로 화월을 봤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화월은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시금 길게 몸을 빼고 앉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스스로도 제 마음의 의중을 알 수 없어 고민이었고, 둘러대자니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은 탓이었다. 슬리데린의 서화월이 후플푸프의 수색꾼을 응원한다니, 여간 이상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화월은 옆에서 툭툭 제 팔을 치는 지후를 무시한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혼자만 이러는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어째서 춤을 춘 건 두사람인데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잠을 설치는건 저 뿐이어야 하는 거냐고, 문득 억울한 기분이 울컥 올랐다.


 올해는 눈꽃이 언제쯤 피려나.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던 중에 여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이 뺨을 스치는 11월이었다. 눈이 잔뜩 내리면 봄꽃 만큼이나 만개할 눈꽃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는 투였다. 아.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화월은 말도 안된다며 고개를 내젓다가도 작달만한 가능성을 그렸다. 꽃, 꽃이라. 그러고보니 퍽 꽃을 닮은 모양새였다. 단아한 백합이라던가, 하이얀 치자꽃 따위를 얽어 놓으면 당신을 닮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꽃이 피는 계절은 아니었으나 아무려면 어떠랴. 이러니저러니 해도 화월은 퍽 재능있는 마법사였다. 생각하는 머릿속 가득 꽃이 피었다. 또 겉으로 티가 나지 않고도 전할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마법 학교라면 응당 마법을 써야 하지 않을까. 일자로 곧은 입매에 매끄러운 호가 그려졌다. 





*



 재이는 시합을 앞두고 경기복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을 찾았다. 슬리데린 응원석에 앉은 노란 머리칼이 눈에 띈 탓이었을까.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긴장이 덜 풀렸는지 손 끝이 찼다. 손가락을 주무르며 문을 밀고 들어가는데, 전날 경기복을 갖다 놓을 땐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조금 이른 호접란과 히아신스. 꽃에 대해 상세한 지식은 없었지만 재이가 기억하는 바로는 두어달은 더 있어야만 개화기였다. 종이 포장지를 묶은 녹색 리본에는 하이얀 백조 깃이 꽂혀 있었다. 노오란 경기복 위 온통 하얗고 분홍빛인 꽃다발이 퍽 시선을 끌었다. 행운이 날아든다,고. 언젠가 들었던 꽃말을 떠올린 재이는 익숙한 백조 털을 내려보며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얼굴을 그려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탈의실에 온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실력 좋은 순혈 마법사라는 명성이 자자한 노란 머리칼의 여자아이. 확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어쩐지 너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호박색의 빛이 형형한 눈동자. 꽃을 닮은 얼굴. 나비의 날갯짓을 닮은 춤사위. 세상의 모든 예쁜 것들을 갖다 붙이면 네가 될까. 문득, 머릿속 가득 그 얼굴이 떠올랐다. 두 뺨을 타고 후터분한 열이 오른건 동시였다.

 어쩐지 오늘 시합은 이길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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