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월재이 해리포터 AU-꽃










 닙에 가득찬 잉크가 후두둑, 쏟아졌다.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좌우로 움직이던 깃펜이 힘없이 양피지 위로 떨어진 것은 동시였다. 애써 한 숙제가 검게 번져 쓰지 못하게 되어버릴 때까지 화월은 넋을 놓고 눈동자를 돌리지 못했다. 노오란 시선의 끝엔 눈꽃을 닮은 하이얀 부엉이의 깃털이 얌전히 나무로 된 책상의 단면 위에 놓여 있었다. 결국 옷의 소맷단까지 잉크가 번지고 나서야 화월은 퍼뜩, 시선을 내렸다.


 “아, 이거 못쓰겠네.”


 벌써 여섯번째였다. 숙제를 망친 것이 세었던 횟수로만 여섯이라는 뜻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숙제를 생각하며 아픈 머리를 감싸쥐었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것까지 치면 아마 두 손을 다 꼽고도 모자랄 것이다. 이게 다 저놈의 깃털 때문이다. 애먼 깃털을 노려본 화월은 울음을 삼키며 새 양피지를 꺼내고 엎어진 잉크를 닦았다.


 하지만 여지껏 되지 않던 것이 몇 시간을 더 준다고 해서 될 리가 없었다. 숙제 한 번, 깃털 한 번, 닙에 잉크를 채우고 다시 깃털 한 번. 도무지 더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화월은 새로 꺼낸 종이의 반도 채 채우지 못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아, 정말. 한탄 섞인 숨이 새어나왔다. 머그컵 가득 따라두었던 커피를 연거푸 들이키고, 늘어놓았던 짐을 정리해 제 침대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왜 벌써 와? 숙제 한다더니.”


 동급생의 질문을 손짓 몇 번으로 가볍게 넘기고 길게 허리를 뻗대며 엎드려 누웠다. 눈 앞에 둥둥 떠있던 깃털은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더니 이내 베갯머리에 너울너울 떨어진다. 화월은 손가락으로 깃털 끝을 잡고는 빙글 돌려도 보고 가만히 내려다보기도 하며 눈을 깜빡였다. 앙 다문 입술 끝이 조금 올라가는 것 같기도 했다.


 신데렐라의 마법처럼. 유리구두도 아니고, 깃털이 뭐야.


 괜시리 자리에 없는 이에게로 탓을 돌렸다. 하여간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안된다. 어줍잖게 아는 척을 했다가 마음만 심란해졌다. 함 재이. 와중에도 되뇌인 이름 석 자에 투덜거리던 속에서 열이 났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가면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던 눈이 새카맣게 맑아서, 그게 이리도 기억에 남는 것일까. 아니면 혼혈인 주제에 썩 좋은 실력을 뽐내며 씨익 웃던 그 얼굴이 여즉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울렁거리는 가슴께를 지긋이 누르며 속으로 열을 반대로 센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말처럼 진정하자고, 차분히 생각해보자며 길게 숨을 쉬었다.


 착 가라앉은 머릿속은 고장난 필름 마냥 같은 날의 영상을 돌리고 또 돌렸다. 가깝게 맞붙던 숨이라던가 퍽 향긋하던 체취 같은 것들을. 고 작은 깃털에서 꼭 사람의 체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숙제도 망쳤는데 잠까지 설칠 순 없다며 깃털을 콱 쥐었다, 혹여라도 깃이 상했을까 슬그머니 펼쳐보는 양이 우스웠다. 마른 침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사위가 검어진 시야에 붉게 파인 드레스가, 하이얀 깃털과 새카만 눈동자가 어른거렸다.

 뒤숭숭하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새벽녘이면 범람하던 감정의 파랑 또한 밤의 냉기와 함께 쓸려 내려갔다. 퀭한 눈을 부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또 잠을 내리 설치고 말았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펴자 옆 침대에서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별일이네. 어제 일찍 들어왔잖아.”


 어려서부터 컨디션 관리를 중시하던 화월이었다. 아프거나 피곤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실리와 일의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어머니의 아래에서 늘 듣고 자란 말이기 때문이었다. 며칠간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것을 알고있다는 듯 날아든 말이 정곡을 찔렀다. 화월은 괜히 큼큼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으쓱해보이고 말았다.


 “꿈자리가 사나워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같은 사람과 같은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는 꿈이라니, 여즉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잠에 푹 들 수 있는 마법약이라도 만들어줄까? 짐짓 걱정스런 말에 화월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여간 슬리데린에 어울리지 않게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렇게 순해 빠져서야. 투욱, 말을 흘리면서도 친우를 보는 눈에 일순 뜨끈한 감정이 서렸다. 시원한 물이면 돼. 말갛게 눈매를 휘어접는 웃음에는 쉬이 드러나지 않는 본심이 섞였다.








 퀴디치 경기가 곧이었다. 퀴디치 경기는 호그와트에서 매년 열리는 큰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기숙사 대항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합날이 다가올 수록 기숙사끼리의 견제도 심해지는데, 개중에는 후플푸프의 실력 좋은 주전 수색꾼에 대한 이야기 또한 종종 화두에 올랐다. 화월은 눈에 띄게 소란스러워진 복도를 걸으며 들리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다.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말을 넘기며 시선을 돌렸지만 익숙한 이름이 나올 때면 쫑긋 세운 귀 끝엔 늘 발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실력 하나는 좋다더라, 하면 입가가 간질간질 하다가도 혼혈이네 어쩌네 하는 소리가 들리면 지팡이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우스운 일이었다. 뼈 끝까지 순혈주의인 저가 반응할 곳은 거기가 아니었다. 짝, 소리가 나게 제 뺨을 치곤 고개를 털었다. 생각보다 크게 난 소리에 옆에서 화들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 묻는 말이 들렸다. 


 “야, 야, 서화월.”


 “어?”


 그제야 고개를 들자 무언가 건수를 잡았다는 눈빛의 지후가 시야에 들었다. 무슨 일인데. 히죽히죽 웃는 양을 보니 벌어지려던 입이 꾹 닫혔다. 찬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비웃었었는데, 이제와 같은 명목으로 덜미를 잡힐 순 없었다. 일방통행이란게 이렇게 답답할 지 몰랐다. 천하의 김지후가 짝사랑이냐고 깔깔대던 과거의 제 목을 콱 쥐고 싶었다. 아니, 사랑이라니. 방금 사랑이라고 했나? 어림 없는 소리. 말도 안된다, 정말 말도 안,


 “뭐야, 왜 대답은 없고 혼자 그래. 진짜 어디 아파?”


 지후는 끙끙대며 머리를 쥐어뜯는 손을 잡아챘다. 뺨이며 귓불 따위가 싯붉게 익은 얼굴이 낯설었다. 근래에 화월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기숙사에 퍼진지 오래였다. 그래봐야 숙제가 많아져서 피곤해보이는 거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정도가 심했다. 지후는 영 이상하단 눈으로 화월을 봤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화월은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시금 길게 몸을 빼고 앉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스스로도 제 마음의 의중을 알 수 없어 고민이었고, 둘러대자니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은 탓이었다. 슬리데린의 서화월이 후플푸프의 수색꾼을 응원한다니, 여간 이상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화월은 옆에서 툭툭 제 팔을 치는 지후를 무시한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혼자만 이러는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어째서 춤을 춘 건 두사람인데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잠을 설치는건 저 뿐이어야 하는 거냐고, 문득 억울한 기분이 울컥 올랐다.


 올해는 눈꽃이 언제쯤 피려나.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던 중에 여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이 뺨을 스치는 11월이었다. 눈이 잔뜩 내리면 봄꽃 만큼이나 만개할 눈꽃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는 투였다. 아.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화월은 말도 안된다며 고개를 내젓다가도 작달만한 가능성을 그렸다. 꽃, 꽃이라. 그러고보니 퍽 꽃을 닮은 모양새였다. 단아한 백합이라던가, 하이얀 치자꽃 따위를 얽어 놓으면 당신을 닮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꽃이 피는 계절은 아니었으나 아무려면 어떠랴. 이러니저러니 해도 화월은 퍽 재능있는 마법사였다. 생각하는 머릿속 가득 꽃이 피었다. 또 겉으로 티가 나지 않고도 전할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마법 학교라면 응당 마법을 써야 하지 않을까. 일자로 곧은 입매에 매끄러운 호가 그려졌다. 





*



 재이는 시합을 앞두고 경기복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을 찾았다. 슬리데린 응원석에 앉은 노란 머리칼이 눈에 띈 탓이었을까.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긴장이 덜 풀렸는지 손 끝이 찼다. 손가락을 주무르며 문을 밀고 들어가는데, 전날 경기복을 갖다 놓을 땐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조금 이른 호접란과 히아신스. 꽃에 대해 상세한 지식은 없었지만 재이가 기억하는 바로는 두어달은 더 있어야만 개화기였다. 종이 포장지를 묶은 녹색 리본에는 하이얀 백조 깃이 꽂혀 있었다. 노오란 경기복 위 온통 하얗고 분홍빛인 꽃다발이 퍽 시선을 끌었다. 행운이 날아든다,고. 언젠가 들었던 꽃말을 떠올린 재이는 익숙한 백조 털을 내려보며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얼굴을 그려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탈의실에 온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실력 좋은 순혈 마법사라는 명성이 자자한 노란 머리칼의 여자아이. 확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어쩐지 너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호박색의 빛이 형형한 눈동자. 꽃을 닮은 얼굴. 나비의 날갯짓을 닮은 춤사위. 세상의 모든 예쁜 것들을 갖다 붙이면 네가 될까. 문득, 머릿속 가득 그 얼굴이 떠올랐다. 두 뺨을 타고 후터분한 열이 오른건 동시였다.

 어쩐지 오늘 시합은 이길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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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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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색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단색으로 밑색을 깔아드리는 것 정도는 무료로 해드립니다.

* 순서 : 문의 -> 입금/입금 확인 -> 러프 -> 컨펌 -> 스케치 -> 컨펌 -> 펜선 따기 -> 스캔 -> 포토샵 -> 확인 -> 완성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스케치 이후로는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또 스케치 후 50% 환불, 펜선 따기 후에는 환불이 불가능하니 유의해주세요.)

* 사물, 동물 위주로 작업합니다. 사람의 경우 일부를 확대해서 그리는 것은 가능합니다. (ex: 눈부터 코까지, 뺨부터 입술까지, 이불 밖으로 나와있는 발, etc)

* 본계/1차계 트친 한정으로 오브제 하나당 1,000원씩 할인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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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 A -작은 사이즈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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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 A

작은 오브제

개당 3,000원

 

위부터 펜 드로잉/드로잉+밑색/드로잉+밑색

 

ㅂㄹㅈㅇ 브랜드 스토리북 일러스트


 

 

 

 

ㄷㅅ님 책 앰블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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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사이즈의 오브제

개당 6,000원

 

ㅎㅇㄹㅇㅇㅌ 회사 신년 카드 일러스트

ㅂㄹㅈㅇ 브랜드 스토리북 일러스트


(연습용 러프한 드로잉 입니다. 이것보다 깔끔하게 작업합니다.)

 

 

 

 

TYPE C 

큰 오브제 (표지로 신청할 시 +40,000)

개당 40,000원

 

 

(토끼: 40,000원 + 시계 2개: 40,000원 + 작은 시계에 체인 :12,000원 + 톱니 2개/시곗바늘 2개: 12,000)

 

ㅌㅂㄹ 리미티드 에디션 티 패키지 디자인

 

ㅅ님 표지 작업

ㅌㅍ님 표지 작업




[화월재이] 해리포터 AU





앤오님 설정


서화월- 슬리데린

몸이 유연해서 춤을 굉장히 잘 춘다. 별명은 파티의 여왕. 순수혈통 28가문 안에 드는 유서 깊은 가문의 늦은 외동딸로 굉장히 사랑받고 자랐다. 잘 하는 과목은 산술점과 약초학. 유독 마법약에 취약한데 그마저도 E에서 A 사이.

늦게 태어난 외동이라 안 되는게 없이 자랐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안 돼. 라는 말이 저 애랑은 눈도 마주치지 말아라. 같은 거라서 왜 안되는지에 대해 살짝 불만이 생겼을 것도 같고. 언제 한번쯤은 밖에서 재이 빗자루 타고 날아가는거 봤어도 좋고.

준이랑은 어린애들이 으레 그렇듯 예쁜 또래에 대한 동경도 없고 거의 가문 물려받을 애들이라 주변에서 치덕거리는걸 은근 귀찮아했는데 안 그러니까 불호보다는 나름 호감 쪽이었을 것 같다. 재이 빗자루 타는거 본 날에 슬쩍 여기에 너 말고 우리 또래 있냐고 물어보는걸로 건너서 아는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화월이 성격상 이것저것 귀첞을 정도로 엄청 물어본건 아니겠지만 준이는 중간에서 대충 눈치채도 그냥 둘이 얘기하지 어른들이 뭐라고 날 끼냐. 하면서도 나름 잘 얘기해주고 할 것 같고.


함재이- 후플푸프.

래번클로 출신이 수듀륙빽빽한 집안에서 후플푸프에 들어가서 가문이 난리가 났었다. 본인도 왜 휴플푸프인지는 모르겠다고. 아빠는 머글태생 마법사, 엄마는 순수혈통 마녀인 혼혈. 외할아버지랑 사촌동생과 함께 자랐다. 변신술에 재능이있다. 가장 점수가 좋은 과목은 비행술인만큼 2학년때부터 퀴디치 팀 주전 수색꾼으로 뛰었다. 마법의 역사 수업에서 유일하게 단 한번도 졸아본 적이 없는 인물. 덕분에 빈스 교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있다. 그러나 성싱해서가 아니고 안 들어서 안 잔다.

재이 부모님의 결혼은 순수혈통 가문들 사이에서 꽤 이슈가 되었던 일이라 대부분 가문들이 암묵적으로 입에 올리지 않는 주제. 때문에 어릴 때부터 순혈 가문 파티에 참석은 했지만 은근히 겉돌았다. 정작 본인은 별 관심 없었을 것 같지만. 그 틈새에서 어른들 입방아에 별 관심이 없는 밀이랑 어쩌다 안면을 트고, 준보리가 친해지면서 넷이 자연스럽게 어울렸을 듯. 언젠가 어떤 파티에서 밝은 금발 여자애를 보는데, 어른들이 엄청 싸고 도는게 한 눈에 보일 정도라 알아서 자리를 피했는데 스치듯 본 웃는 얼굴이 흐린 잔상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가끔 그 애가 집에 오면 어른들이 못 나오게 방 안에만 있으라고 묶어둘 것 같은데 창문 밖에서 뒷모습이라던가 치맛자락 나폴거리면서 걷는 모습 종종 보면서 안 보이면 좀 심심할 정도였으면. 준이가 가끔 그 여자애 얘기 할 때면 아닌 척 열심히 들을 것 같다. 근데 이름은 물어본적이 없어서 서로 몰라도 좋고. 한창 활발하게 교류하던 터라 한 1년간 그랬을 것 같다. 일 때문에 저택을 비웠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고 가문 사람들이 재이한테 저랬다는걸 알고 노발대발하셔서 본가에 사람은 할아버지, 재이랑 준이, 이모. 이렇게 넷밖에 안 남을것같다. 원체 이모나 랄아버지가 바빠서 애들 정서에 안 좋을까봐 방계 친척들이 본가에 머무르는걸 허락했더니 이 사단이 났다고 혀 차시고. 친척들 없는건 상관 없는데 이제 그 여자애가 안 보여서 내심 창 밖 보는거 습관된 재이가 보고싶다. 가끔 준이 건너서 잘 지내냐고만 물어볼 듯. 왜 궁금한지는 자기도 몰라서 딱히 궁금해하는거 티낼 것 같지는 않다.

재이는 재이대로 잊고 살다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화월이를 볼 것 같다. 춤 추는 발끝 하나하나에 흐릿하게 나폴거리는 치맛자락이나 까만 메리제인 구두같은거 오버랩되고. 근데 누군지 기억을 잘 못 하다가 고개 돌리는데 웃는 얼굴에서 그 여자애 생각해내고.





여기서부터 개인설정+앤오님이랑 푼 썰.


1일 저녁 :

내리 깔은 눈

주변에서 소란스러운 공기, 말포이처럼 시비를 거는 쪽도 있고 눈치를 보는 애들도 있고 주변 애들한테 인사를 하는 애들고 있는데, 어디에도 끼지 않고 누구랑도 말 섞지 않은 채 조용히 눈 내리깔고 서있을 듯. 고고한 분위기. 아마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왠만큼은 교육받고 가지 않았을까.

눈치 없게 굴지 말아라, 다른 애들처럼 소란 떨지 말아라, 수선스럽게 굴지 말고 품위있고 교양있게 행동해라 등등등.

그래도 알아볼 치들은 알아보고 화월이 눈치보고 있지 않았을까.

순수혈통 가문 애들이라던지, 슬리데린에 갈거라고 미리부터 확신하는 애들은 특히.


기숙사 배정이 끝나고 연회가 시작되면 미리부터 얼굴을 익혔던 애들이랑만 간간히 인사하고 말 걸고 할 거 같다. 그래도 기본 성격 자체가 워낙 오지랖도 넓고 밝은 편이라 근질근질 하지 않았을까. 지후네 집안이랑은 기본 설정 그대로 끌어와서 가깝고 친한 가문이라 지후랑도 어릴 적부터 자주 만나던 사이였으면. 분위기 잡고 있다가 지후 다가오니까 그제서야 풀어져도 좋다. 둘이서는 어릴 적에 둘만 있을 때 굴듯이 긴장 풀고 막 대하고 장난도 치는데 그것도 주변에서 보기엔 그들만의 리그였으면. 

여튼 적당히 알던 얼굴들이랑 같이 다니게 되고, 지후랑 친한 선배들이랑 안면 트고 하면서 그럭저럭 있는 집 자제들끼리 모이게 되지 않을까.


학교 적응은 가문이 가문이다보니 잘 할 듯. 본인 자체도 긴장하거나 적응력이 떨어지는 편이 아니고, 붙임성도 좋다보니 곧잘 지낼 거 같다.

먼저 말을 거는 애들한테는 살갑게 웃어주나 명확하게 선을 긋고 그 이상 침범할 때에는 눈부터 웃지 않음. 이따금씩, 학기 초에 멋모르고 도를 지나치는 동급생에게는 여왕님 같은 표정을 지어주지 않을까(...) 얼음이 뚝뚝 떨어질 만큼 싸해졌으면. 


그리고 할로윈데이. 프롬파티 같은 큰 파티가 아닌 연례행사처럼 있는 연회 때에도 뭔가 있을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영화에서는 못봤지만 파티장이라던가...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라던가 있지 않을까... 처음 빛을 발한건 개인적으로 여기였으면 좋겠는(...) 퀴디치 시합 전이고 화려하고 이목을 끄는 외모와 춤사위에 재이 눈에 한 번쯤은 들고 갔으면 좋겠다.


대망의 퀴디치 경기 시즌~ 아무래도 신입생이고, 비행술에 능하긴 하지만 아주 베스트는 아니라 선발팀은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슬리데린 내 유명인사 답게 교내 모든 행사에는 관심 맥스였으면 좋겠다. 후플푸프 대 슬리데린. 지후랑 2살 차이니까 딱 지후의 마지막 퀴디치 주전 시즌. 재이는 화월이랑 한 학년 차이이니 퀴디치 주전 첫 시즌. 지후를 응원할 셈으로 맨 앞 줄에 서서 응원을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머리의 상대팀 수색꾼이 눈에 밟히는거. 외모가 화려한 것도 아니고, 학교에 와서 처음 보는 선배인데 첨엔 오롯이 실력 만으로 눈에 들지 않았을까. 문득 호기심이 솟아서 주변 애들한테 물어보니 아, 저 선배 혼혈이잖아. 하는 대답 돌아와서 그대로 충격먹고.

이러나저러나 화월이 순혈주의인거 제가 참 좋아합니다 ^p^)<

혼혈이라니 거짓말이겠지...이러다 길 가다가 복도 같은 데에서 마주치면 자기도 모르게 숨거나 피하고 어라, 내가 왜? 싶어하는거.


피하기 위해서는 결국 찾아야 하잖아요 *^^*? 이래저래 자기도 모르게 의식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고, 눈에 보여야 숨을 수 있으니 어느 순간부턴가 찾고 있고. 혼혈이란건 걸리지만 그래도 사람이 궁금한건 어쩔 수 없는거라, 열심히 자문 구하고 다니기도 하고. 찾을 수록 사람한테 빠지기 시작했으면.

이 과정에서 어릴 적 눈도 마주치지 말라던 검은 생머리의 여자애를 기억해냄. 익숙한 눈매가 떠오르고, 준이한테 넌지시 물어보는 것도 이쯤일 거 같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파티. 사실 처음 잡았던건 가문끼리의 연회->크리스마스 파티였는데 시간차가 너무 없어서 일단 크리스마스 파티로. 

이 때 처음 재이가 화월이를 봤으면. 화려하고 화려하고 화려한 화월이(...) 제대로 된 파티의 여왕 타이틀은 이 때 붙지 않았을까ㅋㅋ

람님 설정 갖고와서, 재이는 화월이 의식한 후부터 대놓고 뭐하는 앤지 알아보거나 하는데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게 화월이 소식이라 내가 이제까지 얘를 왜 몰랐지, 하는거 보고싶다.

여기서 나오는게 커미션 넣었던 재이 파티복 ^p^)9 사실 크리스마스 때 만찬이고 파티는 못본 걸로 기억하는데 그냥 제가 넣고싶어요... 없으면 연중 프롬 같은 거라도 해줘 mm) 튼 이게 12월-1월 이 사이의 일!


그리고 가문 연회날. 8월 즈음, 여름방학 중에 가문 연회가 있었으면.

이건 전에 람님이랑 잡았던 설정대로 가장무도회~ 어른들은 많지 않고 친하거나 가까이 지내는 가문끼리의 애들만 복작하게 모인 파티. 암묵적으로 호그와트 개학 전 학생들끼리 지내는 파티 같은 거여도 좋다.

공작깃, 백조, 등등 온갖 화려한 깃털에 반짝이를 묻힌 가면의 화월이랑 새하얀 부엉이 털이 하나 장식되어 있는 재이 가면.

화월이는 사실상 그냥 딱 들어가면 서화월이다 싶을 듯ㅋㅋ 다만 재이는 워낙 이런데에 참여를 안하는 편이라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준이랑 밀이가 있다면 그 둘 정도...? 밀이네 가문은 모르겠지만 준이네는 참여했을 거 같다.

튼, 와중에도 학기 내내 서로를 죽어라 관찰한 둘은 단번에 알아볼 것. 재이가 정장, 화월이가 붉은색과 검은색의 허벅지를 반 조금 넘게 덮는 드레스였으면.

재이가 먼저 가서 춤 신청을 하는데, 재이를 찾던 화월이의 시선이 공중에서 어지럽게 맞붙으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매력적으로 웃으며 재이 손 맞잡아라. 중간부터는 주변에서도 다들 춤을 멈추고 그 쪽을 볼 만큼 화려한데 절제된 춤을 췄으면. 화월이야 워낙 주변에서 눈여겨 보고 있다지만 재이에 대한 정보는 제로에 가까워서, 다들 상대가 누군지에 대해 수군거리고. 마지막에 화월이가 재이 가면의 깃털에 가볍게 입맞췄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로 파트너가 바뀌고, 재이는 소리없이 스테이지에서 순간이동으로 물러났으면. 파티 끝나면 홀연히 사라지고. 화월이는 뒤늦게 재이를 찾으려고 뛰어 나가는데 거기엔 가면에 붙어있던 하얀 깃털만 남았으면.


그리고 다시 크리스마스 파티. 이 때에는 대놓고 맞관 삽질 -ing. 서로 맞사랑 하는거 준이나 지후나 튼 주변 인물들은 거의 다 낌새 눈치챌 무렵. 이 때에는 가장 무도회 때처럼 대놓고는 춤 못 추고 이따금씩 눈이 마주치면 양쪽 다 화들짝 놀라며 피하는 정도. 적당히 달달한 분위기 였으면.


대망의 발렌타인데이. 

일단 신년에, 화월이한테로 선물이 잔뜩 들이닥치는 가운데에 익명의 선물 도착. 개인적으로 브로치였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팬던트라던가... 다음 파티 때 그거 하고 갔으면 좋겠다. 튼, 화월이는 가문도 가문이고 슬데 내에서도 많이들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애라 선물에 자기가 보내는 거란걸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것들(흔하게는 이름, 가문 문양 등등)이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부지기수 였고, 선물을 받은 다음 날에 화월이가 가서 아는 척을 하면 그 애는 그게 뭐라도 된다는 양 자랑하고 다니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익명의 선물이 굉장히 낯설 것. 관심은 가고, 호기심도 따라붙고 와중에 근 일 년간 자기를 집요히 괴롭히던 후플푸프의 선배가 생각나서 이래저래 머리 싸멜 것이다.

결국 두근거리는 감정+도끼병 아니냐며 자책하는 것만 남긴 채 의문으로 남은 선물.

와중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발렌타인 데이 때. 신년에는 선물 전해주는 부엉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똑똑히 봤으면. 방과후 복도에 혼자 있을 때 왔다던가 해서 그대로 따라가주면 베스트. 고급스럽게 포장된 초콜릿이 왔는데 보내는 이를 보니 익명이라, 멍하게 있다 그 위로 나폴나폴 부엉이 깃털 하나 떨어졌으면 좋겠다. 익숙한 깃털 모양에(가장 무도회 때 재이 가면 위 깃털) 눈을 몇 번이고 부비다 놓칠 새라 부엉이를 따라갔으면.

모퉁이를 돌아 간 자리에는 재이가 있고.

사실 눈이 내릴 시기는 아닌데 그 때 유난히 추위가 덜 가신 봄이었어서, 가늘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눈으로 바뀌었으면.

람님 설정 갖고와서(mm) 급히 뛰어 오느라 평소의 말끔한 모습과는 다르게 잔뜩 흐트러진 망토며 넥타이, 상기된 얼굴, 머리카락에 맺힌 눈송이, 아직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빛나는 나무 장식들 너머로 흩날리는 눈발. 그 사이에 금발 사라락 흐트러지고.

화월이는 그저 그토록 그리고 또 그리던 익숙한 상이 망막에 맺혀서 잔뜩 상기된 얼굴이 벌겋게 물들 것. 당황한 눈 가득히 담긴 금빛 제 잔상이라던가, 서로 벙 쪄서 보는 와중에도 서로가 예뻐서, 아직 채 자각하지 못한 덜 자란 감정이 벅차서 과부하에 걸린 사람 마냥 멍할 것.

둘 다 넋 놓고 있다가 먼저 퍼뜩 정신 차린 재이가 도망치려고 하니까 화월이가 그대로 소환마법으로 불러서 준비했던 초콜릿 품 안 가득 안겨주고 먼저 사라졌으면. 여기서 재이 완전 벙 쪄서 머리에 눈 쌓이도록 가만히 있다가 길 가던 찬이나 밀이가 등짝 퍽 치면서(리들리들) 멍하게 기숙사로 걸음 옮기고. 도착해서야 ?????? 뭐지???? 하다 일단 착생 위에 올려놓고 초콜릿에 보관 마법 걸은 후에야 아, 진짜 예쁘다... 하는거. <내 앤캐 우주 최고 귀여움;;;;;;

화월이는 화월이데로 재이가 줬던 거나 재이일 거라고 생각하고 모아뒀던 (eg.하얀 깃털, 신년 선물, etc) 장식장에 오늘 받은 초콜릿 얹어 놓고 가만히 있다 그제서야 뺨부터 귀 끝까지 빨개져서는 얼굴 양 손에 폭 묻고 발 동동 구르는거.


그러고도 이어진 건 조금 후의 이야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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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하


성씨 이 (李)

눈 설 (雪)

여름 하 (夏)




Hight: 172cm

Weight: 57kg

Birth: 

Sex: Female

Age: 27

Major: Photographer

Blood-type: RH-AB

Favor: 사람이건 사물이건 예쁘고 반짝거리는 것(피사체), 샷을 더해 진하게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

Hate: 미완성된 것(작업, 퍼즐, 하다못해 청소도. 앉은 자리에서 끝내야 하는 성격.), 우유부단한 사람.



반곱슬에 백금발, 주로 하나로 묶어서 떨어져 내리는 헤어스타일.

벽안.

엷은 색소

문신(가슴 옆 혹은 골반에 총구, 목 끝에 톡 불거진 뼈부터 등줄기로 길게 내려오게 레터링_Luce sicut stellae (별처럼 밝게 빛나라)

붉은/말린 장밋빛 루즈, 스모키 화장.


퍼스널 컬러는 딥블루, 화이트와 골드.


길게 찢어져서 끝이 올라간 눈매


큐브 퍼즐


러시아계 혼혈


피어싱 (오른쪽 귓볼 연달아 2개, 왼쪽 귀-귓볼 1개, 연골 2개, 목 뒤 디귿자 1개)


시원시원한 성격

짙은 화장과 분위기 덕에 다가가기 어렵다는 인상을 줌.

붙임성이 좋아서 첫인상에 비해 마음 먹은 사람과는 쉽게 친해지는 편.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어지간해서는 서글서글하게 사람을 잘 대함.


작업시에는 굉장히 예민해짐.

완벽주의자. 약간의 강박증.

작업 중일 때와 평소의 갭이 매우 큰 편.


카페인 중독. 잠은 거의 자지 않음.

이따금씩(주로 작업 시) 중독되지 않을 정도로 극소량의 정제 코카인(물담배).


인간관계는 넓으나 정말 친하다고 부를만한 사람들은 매우 협소.

넓은 인간관계 안에는 화려한 사람들이 대부분. 주로 먼저 다가가서 친해진 부류.

연락처에 제대로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은 오래된 인연, 혹은 정말 드물게 마음에 쏙 드는 성격과 외모의 사람.


화월이를 24살에 콩쿨장에서 봄. (화월 17살, 봄.)

우연한 기회로 심사위원 측근을 알게 돼서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화월이를 보고 피사체로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함.

이후 화월이랑 화보를 찍을 사람을 찾다 화월이의 소개로 지후를 만남.

-> 화월 17세, 지후 19세.


(개인적으로 지후 화보 찍을 때 전속으로 있어도 좋을 거 같습니다...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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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네코마 온리전(혈구모임) 에서 판매 예정인 쿠로츠키 트윈지 재(災灰滓再)의 샘플 페이지 입니다.






리베 (@sua_doll)





 담배를 태우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퍽 상쾌하지 못한 기상이었다. 츠키시마는 성인 남자 두 사람이 비좁게 들어맞는 침대에서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제멋대로 구겨진 시트는 반절 정도가 밀려서 간신히 침대 끝에 걸쳐져 머물고 있었다.


 “담배, 안에서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 그랬던가?”


 느른하게 풀어진 목소리가 실없이 웃었다. 가볍기 짝이 없는 웃음에 츠키시마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미간 위로 긴 획을 그었다. 잔뜩 찌푸려진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그저 연기를 내뱉는 일에 지성을 다했다. 희뿌연 연기가 녹진하게 뭉쳤다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공기 중으로 흩어진 것이 제 숨에도 뒤섞일걸 생각하니 속이 메스꺼웠다.


 미적지근한 관계가 끝나면 그는 언제나 하얀 필터를 입에 물었다. 하지 말라고 한게 벌써 일 년 째인데, 하여간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더 해봐야 소용 없단걸 알면서도 관계를 맺을 때마다 시비를 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다못해 창문이라도 여세요.”

 “그치만 밖은 추운걸?”


 그건 쿠로오씨 사정이고요. 짜증스럽게 덧붙인 츠키시마가 널브러진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쿠로오 라고 불린 남자는 잠시동안 마른 몸뚱이를 응시하다, 다시금 손가락에 걸친 담배에 입을 갖다 대었다. 또. 울컥 비어져 나오려던 목소리를 꾹 눌렀다. 슬 올라간 입매가 여기서 한 소리를 더 했다가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기운을 잔뜩 내풍기고 있었다.


 춘삼월의 경치는 제법 따사로왔지만 정작 날씨는 그리 포근하지 않았다. 두 번 샘내다간 꽃이 먼저 얼어 죽겠네. 나지막히 읊조리는 말에 츠키시마는 그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먼저 갈게요.”


 담배 한 개비가 채 다 타기도 전에 츠키시마는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가방을 둘러멨다. 아무렇게나 끼워넣은 셔츠의 깃이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쿠로오는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음이 한껏 묻어나는 몸짓에는 아무런 애정도, 성의도 느껴지지 않아서 츠키시마도 그저 고개를 까딱하고 말 뿐이었다.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하얀 셔츠가 말려 올라가고, 츠키시마는 익숙하게 안경을 벗었다.


 “불 끌까?”

 “새삼, 됐어요.”


  정사는 여느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유별나지 않은 애무. 감정은 일절 담기지 않은, 그렇지만 부드럽게 몸을 어루만지는 더운 손.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싸구려 선풍기 소리에 뒤섞인 건조한 신음이 허공에서 부서졌다.


 “넣어도 돼?”


 하여간, 단어를 고르는 센스는 예나 지금이나 지지리도 없었다. 새삼요. 이제와 뭘 그런걸 묻느냐고 덧붙이는 대신에 츠키시마는 하이얀 다리를 허리에 감았다. 다부진 몸이 움직이고 한순간 매트리스가 늘찐히 흔들렸다. 아. 목구멍에서부터 엷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머리를 감싸던 손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쿠로오는 상체를 들어 어깨를 가볍게 받쳐 안았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반지의 잔상이 아른아른 시선을 끌었다. 저를 만날 때에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던 반지. 아무래도 좋았다. 츠키시마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 없다는 듯 상체를 일으켜 입술을 맞부딪혔다. 소리가 새어나올 때마다 되는데로 짓씹어 불어터진 입술 사이로 가늘게 혈선이 늘어졌다. 쿠로오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은 채 입술을 떼었다. 금세 떨어진 온기에 츠키시마는 불만스레 허리를 뒤틀었다.








라젤 (@leesa1134)





 담뱃재의 음울한 향이 방 안을 맴돌았다. 가을과 겨울 사이, 슬슬 건조해졌을 법도 하건만 여전히 눅진거리는 숨결은 무겁게 가라앉아 바닥에 깔린 다다미 위로 진득히 스며들었다. 작은 방을 한가득 메운 냉기 어린 음습함은 뻑뻑 피워대는 담배의 열기에도 도무지 사그라들 기색이 없다.

 불 꺼진 적막 속 구석진 곳의 어둠은 미약한 숨소리마저 게걸스레 베어 물었다. 점점 해가 빨리 지네. 어둑한 정경을 둘러보다 실없는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창 밖으로 요란스러운 경적 소리가 몇 차례 울렸다. 뒤이어 굉장한 엔진음이 아득히 멀어진다.


 귀를 파고든 소음을 끝맺는 먹먹한 침묵을 곱씹으며, 쿠로오는 그 작은 공간이 오랫동안 물을 갈지 않은 어항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도쿄 한복판을 정처 없이 떠도는 어떤 유리된 공간. 그 속에 든 건 얇은 아가미를 들썩거리며 가냘픈 호흡을 이어나가는 금붕어다. 상한 지느러미를 흔들며 몇 번이고 같은 곳을 돌고, 물이 썩어 연약한 비늘이 마모되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체 안주하려는.


 속옷 한 장만 대충 걸친 채 낮은 침대 위로 걸터앉은 그는 작은 창을 채운 뿌연 먼지로 의미 없는 시선을 던졌다. 의식이 하염없이 침잠한다. 잠겨든다. 낡은 시간을 품은 기억이 범람했다. 높게 든 창을 타고 흘러 들어온 햇살 속을 유영하는 먼지와 그 아래에서 빛을 머금던 밝은 머리색, 뭐가 그리 불만인지 미묘하게 찌푸리고 있던 얼굴. 옹기종기 모여든 사내애들 사이에서도 한 뼘은 커 툭 튀어나온 머리꼭지가 유난히 눈에 띄던.


 아니지. 그가 원하는 것은 더 나중의 것이었다. 츠키시마의 웃는 낯을 떠올리는 거다. 자, 시간을 뒤로 돌려 보자. 일 년,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던 그날처럼 찡그리고 있던 얼굴. 이 년, 축축하게 뒤엉키던 숨결과 간절한 몸짓. 삼 년, 익숙한 감각을 좇아 흔들리던 몸뚱어리. 사 년, 저 무미건조한 눈빛. 시선.


 기어이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기억까지 들추어 아주 흙탕물을 만들고 나서야 쿠로오는 비죽 입꼬리를 말아 올리던 얼굴을 문득 떠올렸다. 그런데 그게 언제였더라. 일 년 전이었을까? 아니면 이 년은 되었나. 삼 년 전일 수도 있지. 그도 아니면 갓 만났을 무렵일까. 진탕 들쑤셔진 기억은 어떻게 쏘아보든 명료한 답을 일러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따금씩 어린 날이 남긴 자흔들을 마주해 감구할 때면 차마 막을 새도 없이 연거푸 쏟아져 내리는 것이 있다. 그리움이라 칭하기엔 애절하지 않고 미련이란 단어는 비참하다. 그리하여 이름 하나 붙이지 않은 그것을 속절없이 명치 위, 심장과 폐 사이 어딘가쯤에 한가득 채워 넣고 나면 꼭 속이 답답해져 쿠로오는 습관처럼 담배를 물곤 했다.


 후에 돌이켜 보면 그만큼 부질없는 행위도 없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몸에 밴 굴종은 구차하기 짝이 없어 아무런 알맹이도 담기지 않은 텅 빈 껍질을 물고 늘어질 따름이었다. 자해와 자위의 경계가 흐지부지하게 변색된 경계에서 그는 그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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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츠키








소재멘트 :: 뒷모습


아카아시 케이지 X 츠키시마 케이





  투둑, 투두둑. 등굣길부터 시작된 비는 점점 몸집을 키워서 하굣길에 다다라서는 맞으면 살을 에릴 듯이 쏟아져내렸다. 츠키시마는 빈 손을 내려다보다 우산도 없이 길바닥에 몸을 던졌다. 빗방울이 닿은 곳마다 욱신거림이 퍼지는게 집에 도착할 즈음엔 멍이라도 들 것 같았다. 비에 젖어 뿌얘진 시야에 앞서 걸어가는 하얀 운동화가 들어왔다.


  우산 없는거 알면 좀 씌워주지.


  진흙을 잔뜩 덮어쓴 운동화의 밑창이 퍽 낯익었다. 수십, 수백번을 내려다본 당신의 운동화. 끝이 조금 뻗친 짧은 머리칼부터 선이 고운 허리까지, 당신의 등에 걸린 마른 근육을 말하라면 감히 읊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당신의 뒷모습. 매정하게 돌아선 서늘한 어깻죽지가 가슴을 쿡쿡 찔렀다. 뒤따라 걷는 제 존재를 알면서도 모른 척 시선 한 점 주지 않는 뒷통수가 얄미웠다. 여지껏 잘만 봐놓고, 당신은 꼭 이럴 때에만 야박하더라. 토해내지 못한 열화가 진득히 목구멍에 늘어붙었다.


  알고 있으면서. 다 보고 있었으면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땅을 두들겨대는 비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나를, 내 뒷모습을, 그렇게 보고 있었잖아. 모를 줄 알았어요? 오늘만이 아니었지. 한껏 도취된 눈으로, 내가 당신을 봐온 시간 동안 당신도 날 봐왔잖아. 어딜가나 검질기게 따라붙던 시선. 비쩍 골은 어깻죽지가 시릴 만큼 지켜봐온 주제에 왜 모른 척을 해서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나는 그리 착하지 않아요. 뒤늦게 고개를 돌려도 당신이 나를 내버려둔 시간 만큼 괴롭힐테니까. 나를 빗속에 버려두고 걸어간 이 길을 절대 잊지 않고 계속해서 들쑤실 거에요.


  다 알면서도 모른 척, 그저 못 본 척 넘기면 정말 지나갈 줄 알았을까. 부단히도 피하려 갖은 애를 쓰던 날들, 그러고도 기어이 나를 보던 형형한 눈. 바보. 그래도 내가 좋지. 외면 할 수록 더 깊게 내려앉는 이름 자를 몇 번이고 덧그리고 억눌렀을 당신을 생각하면 심장이 뛰었다. 말해봐요. 당신이 남긴 상흔으로 가득할 내 뒷모습을 보고 얼마나 이를 물었는지. 당신이 나를 채웠듯, 내 존재도 당신을 채우고 있는지.


  당신의 시선이 머문 자리마다 더운 열꽃이 피었다. 나는 수십, 수백번이고 그 눈빛에 난도당했다. 당신만이 알고 있을 선명한 열상. 잘 찢어진 시선 속 홧홧한 열화가 닿아 생긴 생채기가 번졌다. 얼룩져서 깊다랗게 내려 앉았다. 아아, 이제 조금 아픈데. 퍼붓는 낙수에 몸도 마음도 진탕 젖어서, 어지러운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이따금씩 나오던 토스 미스. 철처하던 당신의 얼굴이 무너지고 비껴나간 공을 사이에 둔 채 돌아가는 시선의 끝은 늘 제 쪽을 향했다. 알아차린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간지러워서, 부러 눈을 피하지 않으면 느긋하게 돌아가는 시선이 언짢아서 더 당신을 몰아세웠다. 나를 좀 보라고, 집요히 당신을 좇고 또 물고 늘어졌다. 그랬는데. 그럴수록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는 태도가 오기를 건들였다. 기어이 빗길을 뚫고 당신을 쫓아갈 만큼. 그래, 내가 졌어요. 당신이 이겼어.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봐 줘요.


  악 다문 이 사이로 앓는 소리가 났다. 성긴 마음에 얽어진 시간이 속을 긁었다. 감정이 먹먹히 차들었다. 페부에 물이라도 들이부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 비를 타고 어지럽게 돌던 열화가 머리 끝까지 번지고, 돌연 시야가 죽었다. 찰박. 물소리가 요란했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바지가 찝찝하게 감겨들었다. 황급히 흘러내린 가방을 고쳐메는데, 문득 고개를 드니 하이얀 손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가자, 데려다줄게.”


  회녹빛 눈동자에 가득 담긴 얼굴이 낯설었다. 나른하게 찢어진 눈매가, 잘 빚어진 콧잔등이, 엷은 입술이 생소해서 눈시울이 시큰하게 달아올랐다. 건네진 손 끝에도 열이 번졌다.


  “…늦었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고.”


  아카아시 케이지. 당신이 나를 끌어올려. 긴긴 시간을 돌아 이제서야 마주본 당신의 얼굴이 웃었다. 지나온 길바닥에 늘어진 물길이 멎었다. 시야를 채우던 당신의 뒷모습이 잘게 허물어져 내리고, 환한 얼굴이 그 위로 덧그려졌다.



 사각 사각, 종이 위로 연필이 스치는 소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름 모를 여 가수의 노랫소리. 쌀은 움직이던 연필을 멈추고 슬쩍 고개를 들었다.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쿠와 눈이 마주친다. 쿠는 당황한 듯 눈을 끔뻑이다 베시시,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어, 선배...”


 선배 그림 그리는 거요. 쿠는 당연한 대꾸를 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볼 거 있다고. 쌀은 조금 낯이 뜨거워져 연필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어, 더 안 그려요? 쿠가 물었다. 쌀은 대꾸 없이 커피에 꽂힌 빨대를 입에 물었다.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자 가슴이 한 결 차분해진다. 빨대를 잡고 휘휘 돌리자 얼음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냈다.


 “네가 그렇게 보니까 그리기 싫어졌어.”


 말이 떨어지자마자 흑, 하는 헛숨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이제 안 볼게요! 딴 거 하고 있을 테니까.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내 물방울이 맺힌 컵을 양 손으로 움켜쥔다. 쪼로록, 달달한 카페모카를 들이켰다. 그리곤 잔뜩 쌓인 휘핑크림도 빨대 끝으로 듬뿍 떠 입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쌀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떨어진다. 입술에 크림 묻었어. 담백한 어조에도 쿠의 얼굴은 금세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혀를 내밀어 입술 전체를 핥아냈다. 달았다. 쌀은 그녀의 발그스름한 뺨을 흘끗 쳐다보고는 연필을 다시 잡았다. 유리 벽면 너머에서 새하얀 햇살이 스며들었다. 쿠의 옆모습을 그렸던 연습장 위로 햇볕 그림자가 드리운다. 


 종이를 한 장 넘겼다. 새 종이에 연필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는 쿠를 본다. 딴청을 부리는 척 하더니, 이제는 진짜 다른 생각에 빠진 그녀를 본다.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슥, 스윽, 터치를 하는 하얀 손가락을 본다. 반소매 밑으로 드러나는 기다란 팔. 팔꿈치에서 안쪽으로 꺾여들고, 쭉 하니 뻗어가다 손목에서 또 한 번 꺾이는 아름다운 뼈대. 길게 깎인 연필로 그녀의 선을 따라 그어나간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너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쌀은 과거를 상기한다. 너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그 처음의 날. 햇살과 노래와 네가 하나로 어우러지던 날의 기억.



 그 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하루의 시작이었다. 알람이 울리고, 살포시 뜬 눈 새로 햇살이 스며들고, 푹신한 이불과 포근한 냄새가 몸을 감싸 안는 그런. 그래서 더 깨어나기 어려웠던 아침.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면, 그 날이 지금처럼 찬란하게 느껴질 수 있었을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눈물이 왈칵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 쌀은 간질거리는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사랑. 그 애틋한 단어. 따듯한 감정. 그 시작. 시작이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낯설고도 떨리는 감각. 갖가지 것들이 뒤섞여 온 몸을 가득 채워온다. 쌀은 순간을 붙잡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러자 새하얀 캔버스 위에 생생히 피어나는 기억의 색깔들. 그것을 따라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움직인다. 길마저도 오색찬란. 쌀은 맨 발바닥에 닿는 포근한 기억의 감촉을 더듬어간다. 보드라워. 잔뜩 쌓인 벚꽃 위를 걷는 기분에 절로 웃음이 피었다.  


 그랬다. 때는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 되는 봄. 캠퍼스를 가득 메운 연분홍 꽃잎들과 따사로운 햇살. 쌀은 쏟아지는 벚꽃 눈을 맞으며 캠퍼스를 오가고 있었다.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화사하게 빛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치는 냉락한 얼굴. 쌀은 참으로 다정한 색감에서 저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온 몸으로 봄을 맞이할 때면, 붓을 잡은 손끝만은 가늘게 떨려 와서. 깨끗한 도화지 위에 분홍, 노랑, 소라, 그런 파스텔 톤의 색깔들을 잔뜩 칠하고 싶은 욕구가 피어난다. 그녀의 담담한 낯짝보다는, 해사해진 캔버스가 쌀의 봄을 한껏 만끽 하는 것이었다.    


 타박 타박.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예술 대 건물 안은 바깥의 날씨와는 관계없이 온 종일 서늘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쌀은 벗어 두었던 카디건에 팔을 끼워 넣었다. 다음 수업까지는 두 시간이나 남았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도 없었다. 화실에 가서 어제 그리던 그림이나 마저 그릴까. 어쨌거나 완성을 하고 싶다는 마음과 한번 손을 뗀 그림에 붓질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충돌한다. 


 노랫소리가 흐른다. 쌀의 고개가 슬쩍 돌아간다. 평소였다면 그냥 지나쳤을까. 신경조차 쓰지 않고 화실로 향했을까. 뭐랄까.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게, 그렇게 지나치고 싶지 않았어. 발길을 향하도록 하는 기이한 끌림. 나도 봄을 탄 걸까. 혼란스러움과, 그에 맞먹는 이유 모를 호기심이 그녀를 노래의 시작점으로 끌고 갔다. 복도의 끝. 닫히지 않은 문이 그녀를 반긴다. 무용과. 그래. 무용과의 연습실이 있었다. 


 쌀은 발을 멈추었다. 아니, 심장이 잠깐 동안 멈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의 눈알 속으로 열린 문 너머의 세상이 알알이 들어찬다. 노오란 머리칼의 여자. 검은 민소매 티에 타이트한 검은 바지. 아름다운 몸의 곡선. 뻗어나가는 기다란 팔과 아. 섬세한 손끝. 그 새하얀 손가락 끝에 세상의 모든 빛이 모여 드는 것 같은 착각. 쌀은 탄성이 터지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소리를 내면 모든 것이 부서질 지도 몰라.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가방을 움켜쥔 손에도 바짝 힘이 들어갔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음의 파도에 몸을 맡긴 여자가 아름다웠을 따름이다. 참으로 순수하게, 창작 욕구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뻗어나가는 팔은 태양을 받치고, 튕겨져 올라가는 다리는 달을 향해 나아간다. 턱에서부터 목으로, 어깨로 나려가는 곡선. 부드럽게 움직이는 날갯죽지. 쌀은 여자의 춤사위 앞에서 저를 구성하는 세상이 바뀌려 하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의 거대한 찬란함을, 쌀은 가냘픈 맨 몸으로 온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인간의 내부에는 그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가, 거대한 문이 존재한다. 그 문은 오롯한 타인에게 활짝 열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인간은 울타리 너머에 선 채로 서로를 공유한다. 하지만 때때로, 이다지도 견고한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라 속삭이는 때가 있었다. 그 찰나를 잡아낸다면 인간은 좀 더 쉽게 서로를 의식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열린 건 연습실의 문이 아니라 나의 문이었나. 쌀은 휘몰아치는 격정 속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냥 예쁘장하게 생긴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웃는 얼굴이 예쁘고, 술기운에 절인 뺨이 예쁘고, 유리잔을 움켜쥔 손이 예쁘고. 그녀의 겉껍데기는 확실히 쌀의 취향이었다. 길고 가늘게 뻗어나가는 여자. 언제였더라. 봄 햇살 아래에서 스친 그녀를 기억한다. 봄볕을 쬐는 꽃나무 같아서, 쌀은 조금 웃고 싶은 기분이 들었더랬다. 하지만 너는 예쁘기만 한 게 아니었구나. 이 압도적인 것, 이것에 무어라 이름을 붙어야 할까. 아름다움, 우아함, 강렬함, 섬세함. 수많은 것들이 한데 뒤엉키고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모두 버렸다. 대지위에 굳건하게 뿌리내려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이내 창공으로 날아올라 날개를 펄럭인다. 네 손이 붙잡는 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햇살 줄기일까. 네 눈이 보고 있는 건, 내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별 조각일까.    


 가슴이 일렁거린다. 갈비뼈 아래의 어딘가, 그러니까, 심장인지 늑막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출렁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네가 뛰어 오를 때 마다 가슴 한 구석이 뻑적지근해진다. 네가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숙이자 드러나는 뒷목에 입술이 절로 달싹거렸다. 네 이름, 네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쿠. 쿠. 무의식중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건 아닐까. 쌀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질 쳤다. 좀 더 오랫동안 보고 싶어. 좀 더 그 자리에서 춤 춰줘. 


 한 부분을 집중해서 볼 때와 큰 그림을 볼 때의 느낌은 천지 차이다. 어느 한 쪽이 좋고 어느 한쪽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춤사위에 집중 할 때는 그녀의 발 닿는 곳 마다 물결이 밀려든다고 생각했다. 한 두 걸음 물러나, 그녀와, 그녀의 주변을 함께 볼 때는……. 경이로움. 눈이 시릴 만큼의 아름다움. 눈을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까워져 눈꺼풀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커튼 사이로 햇살이 손을 뻗어오고 그것을 조심스레 맞잡는 그녀의 손길. 뒤로 젖혀지는 상체 위로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전등의 불빛. 전면 거울에는 그녀와 똑같은 모습의 여자가 춤을 춘다. 꽃이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하고, 풀잎을 스치는 바람이, 모래알을 움켜잡는 파도가, 그런,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되는, 아름다움. 


 문득 눈알이 뻐근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참지 않으면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쌀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눈을 감지 않은 채로 그녀의 춤을, 그녀의 몸이 만들어 내는 선율을 응시했다. 


 아, 지금.


 지금, 그림을 그려야 했다.


 쌀은 발을 돌렸다. 화실로 가야해. 지금 이 느낌, 이 감각. 온 몸에 남아있는 그녀의 잔상을 종이 위에 토해내야 했다. 뛰다 시피 발을 놀린 쌀은 화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텅 비어 있었다. 어차피 누가 있고, 없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쌀은 제 자리로 가 이젤 앞에 섰다. 텅 빈 종이 위에는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았다. 그저 무(無)의 세상. 형태도, 색깔도, 의미도 없이, 존재하지 못한 채 버려진 세상. 쌀은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머릿속을 스치는 선과, 색과, 빛과, 어둠. 그 모든 것들을 그려 넣자. 숨결을 불어 넣고, 생명을 쥐어 주자. 경이로울 만큼의 아름다움을, 그 감동을 이곳에. 아무도 발자취를 남기지 않은 백지에 새겨 넣자. 


 연필을 들었다. 가끔, 이런 순간이 있었다. 뇌가 명령을 내리고 그게 수많은 신경을 타고 내려와 손을 움직이는 과정이 아닌, 오로지 손의 판단으로 움직이는 순간. 캔버스 위에는 생각지도 못한 선이 그어지고, 그 선들이 모여 상상하지 못한 형태가 잡히고, 마지막 선을 그은 후 연필을 떼어 내면 가슴 벅찬 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쌀은 이 날을 하나의 분기점이라 여겼다. 흥미 있는 것들도, 그리고 싶은 것들도 없이 흘러가던 무기력한 봄날. 이제 그 봄은 따스하고, 달콤하고, 가슴으로 들어차서, 아, 아아. 스치듯 지나갔던 봄꽃들이 눈동자에 쏙쏙 들이 틀어 박혔다.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오는 빛줄기들이 아름다웠다. 코끝을 스치는 벚꽃냄새. 네가 이곳에 서 있으면 노오란 꽃처럼 보일까. 툭 하니 꺾어서 화병에 꽂아둘까. 봄비를 머금어 완전히 개화하기를 기다릴까. 이유모를 기대감이, 덧없는 고뇌가 쌀의 손끝으로 뻗어나간다.


 나. 네가 궁금해.


 쿠는 때때로 무용과 연습실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이따금씩 쌀은 다른 여자애들 사이에서 웃으며 떠들고 있었고, 또 이따금씩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아주 운이 좋을 때는 그녀가 춤을 추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뛰어오르고 뻗어나가고 휘돌고……. 자그마한 창문 너머로 봐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저 선, 저 움직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언제고, 몇 번이고 보아도 그녀의 춤사위는 쌀의 뇌리에 틀어 박혔다. 매번 똑같이 심장을 뛰게 하면서, 매번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걸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을 손끝에 실었다. 선명하게 남은 그녀의 잔상을 그려내는 선. 굵고 가늘게, 무겁고 가볍게, 빠르고 느리게. 양 극에 있는 것들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크로키. 무엇이든 남겨 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네 춤은, 네가 만드는 세계는 내게 그 정도의 의미야. 

 오지랖 넓은 동기가 물어올 때가 있었다. 누굴 보고 그리는 거야? 그때면 쌀은 이렇다 할 대답 대신 입술을 끌어올려 희미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그 애는 나의 뮤즈야. 


 예술가에게 꼭 한 명쯤은 존재한다는 뮤즈. 영감을 불러일으켜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절대적인 존재. 폴 베를렌이 아르튀르 랭보를 만났을 적 이런 감동에 축축이 젖어들었을까. 물 먹은 도화지 위로 빠르게 번지는 투명한 색감. 한번 스며들면 지워지지 않을 창작에의 열망.


 그때의 나는, 너와, 나의 뮤즈와, 이렇게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봄의 끝자락. 길거리에는 연분홍 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짧아진 소매에 훤히 드러난 팔위로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던 날. 그 날도 나는 창 밖에서 너를 보고 있었고, 너는 팔을 둥글게 만들어 뻗어나가다 나를 발견했지. 우리 두 사람의 눈은 하나의 선에서 연결 되었어. 네 눈은 조금 커다래졌다가 흔들렸다가. 이내 돌아가는 몸뚱이에 우리의 시선은 끊어졌어. 하지만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라는 걸 너도 느꼈을까. 눈을 감아도 말이야. 네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이어져 있는 것 같았어.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 화실로 돌아갔고, 캔버스에는 새로운 그림이 그려졌지. 너의, 참으로 찬란하던 눈빛을 담아. 가득, 한 가득 담아. 


 “있잖아요, 선배.”

 “응.”


 휴대폰을 내려놓은 쿠는 쌀의 동그란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뺨으로 흘러내린다. 쌀은 손을 들어 머리카락 한 줌을 귀 뒤로 넘긴다. 예뻐요. 쿠는 그 세 글자를 목구멍 아래로 삼켰다. 단맛이 났다.


 있잖아요. 난 선배 그림을 볼 때면 가슴이 뻐근해져요. 눈알이 홧홧하니 달아오르고,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질 것 같아요. 나는 선배의 그림에서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나 봐요. 어쩌면 그건 내가 추구하는, 내가 강렬히 바라는 무언가일 수도 있겠죠. 사실 말로는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그 언젠가, 선배의 그림이 걸려 있던 갤러리에서 처음 느꼈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해요. 당신의 크로키 북에 내가 한 가득인 걸 발견했을 때, 그때는 감동 그 이상의 것이 내 몸 안쪽을 가득 채웠죠. 우리, 우리는 이어져 있는 거죠. 그쵸. 


 쌀이 고개를 들었다. 쿠는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사랑했다. 수많은 생각이 가라앉아있는 밤하늘에 저 한 사람이 동동 떠오르는 게 좋았다. 자신의 눈에는 숨기지 못한 정염들이 가득 할 터였다. 하지만 하나, 하나의 감정 조각들에 쌀이 박혀 있었다. 선배. 선배도 내 눈동자를 사랑해요? 쿠는 그렇게 묻는 대신 눈을 접어 웃었다. 


 “밥은 뭐 먹을래요?”

 “너 먹고 싶은 거.”

 “어제도 나 먹고 싶은 거 먹었잖아요. 오늘은 선배 좋아하는 거 먹을래.”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각자의 세상에서 우리는 가장 하고 싶은 말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는다. 말이 아닌 또 다른 언어로, 또 다른 방식으로.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붙잡고, 깍지를 껴서, 완전히 하나가 돼서. 


 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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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월 옷 설정


 평소에는 굉장히 캐쥬얼하게 입고 다님.

 좋아하는(혹은 자주 입는) 스타일은 검정색/흰색 딱 붙는 크롭탑에 청바지나 가끔씩은 와이셔츠 한 장에 레깅스도 입고 오고. 대회 앞두고는 레오타드에 타이즈 위로 반팔 롱티만 걸치고 다니기도 한다.(교내, 바쁠 때)


 시험기간이 아니거나 교내와 교외를 옮겨 다닐 때에는 주로 선이 예쁘게 떨어지는 옷을 좋아함. 그.. 허리가 조이고 골반 부분이 조금 부풀게 잡힌? 카키색/검정색 정장 바지 같은 것도 자주 입고, 여름에는 민소매 원피스도 과감하게 입는 편(파스텔톤 말고 좀 헤어스타일에 어울리는?). 등이 길게 파인 옷도 편하고 시원해서 제법 입고. 등 선 예뻤으면 좋겠다, 등허리 폭 패인 라인 잘 드러났으면. 가을 쯤엔 브이넥의 자몽색이나 와인색 7부 니트 같은 것도 좋아하고. 뼈가 도드라지는 전공이다보니 쇄골 라인도 예쁘게 도드라졌으면.(바쁘지 않은 교내,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나가는 교외)


 약속이 있거나 데이트를 가거나 기타등등 다른 때에는 유행에 제법 민감한 편. 최근에는 오프숄더에 꽂힘. 그 해의 트랜드에 맞춰가는 편.(교외)


 공적인 자리나 콩쿠르 시상식을 나갈 때에는 주로 붉은 색이나 흰/검의 허벅지를 반정도 가리는 원피스. 무용계이다 보니 의상들이 워낙 화려해서 흰색이나 약간 반짝거리는 퍼나 숄이 들어간 것도 종종 입을 것 같다. 사람 자체도 주목받는 편이고 헤어스타일이나 머리색도 결코 묻히는 편이 아닌데 옷도 원체 화려하게 입고(무용 몸매가 있으니 몸이 받쳐줘서 잘 소화했으면 ㅇqㅇ) 하다보니 공적인 자리에서는 제법 유명했으면 좋겠다. 코어 팬층보다는 대놓고 인기가 많다는 느낌.(공적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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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하이큐!! 통합 온리전 TSA 에서 판매 되었던 쿠로츠키 초혼(招魂)의 샘플 페이지 입니다.








 해가 하늘의 서편에 걸릴 무렵 쿠로오는 뻑뻑한 눈을 부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모처럼 원없이 잔 주말임에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사람처럼 몸이 축축 늘어졌다. 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젖은 냄새.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가르고 우중충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딸랑-. 말간 풍경 소리가 빗소리에 뒤섞여 귓등성이를 타고 돌았다. 거실 벽면의 큰 창을 열자 선명한 녹색 이파리가 빗줄기에 흐너져내리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흙이며 부옇게 물기 서린 창틀이 눈에 들었다. 습한 공기 덕에 귓가에 크게 울리는 풍경소리를 뒤로 한 채 쿠로오는 달력의 날짜를 짚었다. 8월 17일. 빨간 색연필로 여러차례 죽죽 그린 동그라미가 잔상처럼 시야에 아른거렸다.


 “축제구나-.”


 어제 저녁나절 부터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아 바싹 마른 입술을 가까스로 벌렸다. 새되게 갈라진 목소리의 끝이 조금 뒤집혔다.


 언제부터 켜져 있었던건지 모르겠는 라디오에서는 기상 캐스터가 오늘의 날씨를 말하고 있었다. 비로 인한 교통 체증이 심하다는 말 뒤로 4시 즈음 부터 비가 그칠 거라는 경쾌한 어조가 이어졌다.


 쿠로오는 라디오의 전원 버튼을 돌려 놓으며 커다란 컵으로 커피를 마셨다. 상자에서 막 꺼낸 짙은 남색의 유카타는 방충제 냄새가 났다. 반쯤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키고 유카타에 몸을 끼워 넣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두시를 조금 넘겨가는 시간임에도 바깥은 마치 귀신이 나올 것처럼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오늘 같은 날에 축제를 오는 사람이 있으려나.”


 말을 그리 하면서도 약속을 취소할 기색은 없었다. 쿠로오는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빈 컵을 가볍게 물로 헹궜다. 거치대에 컵을 놓고 거실 소파에 걸터 앉자 창 밖으로 코를 화단에 묻은 채 킁킁대는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빗줄기가 제법 거셌지만 고양이는 개의치 않았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비 오는 날에 고양이가 꽃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축제에 비하면 화단은 무난한가.


 쿠로오는 시답잖은 생각을 머리 한 구석으로 욱여넣으며 널어놓은 오비를 들었다. 잘 마른 천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설프게 모양새를 잡은 유카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오비를 여몄다. 묶인 외견에 서투른 감이 있었으나 거동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문득 조금 후에 쏟아질 잔소리가 귓가를 앵앵대는 듯했다.


 뭔가 더 정리할게 있던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대던 쿠로오의 시야에 텅 빈 어항이 들었다. 물결치는 무늬가 곱다란 둥근 어항은 깨끗하게 정리가 된 채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전에 들어있었을 색색의 자갈이며 물고기 따위가 눈앞을 어른거렸다. 꼬리가 주황색인 금붕어가 들어가면 좋을 지도 모르겠다며 쿠로오는 짧게 생각을 끊었다.


 남은 시간은 삼십 분 넘짓. 지금 나가면 오분 정도 일찍 도착할 듯 싶었다. 쿠로오는 아직 그치지 않은 비를 내다보며 비닐 우산 하나와 지갑을 챙겨들었다. 모처럼의 데이트이니 제가 기다릴지언정 기다리게 할 마음은 없었다.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하늘을 가득히 수놓은 불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각조각 부서져내려 새카만 수면 위를 유영했다. 여러차례 연이어 터지는 불꽃이 밤의 군청에 자욱자욱 색을 더했다. 이런걸 두고 절경이라고 하는 거겠지. 언젠가 읽었던 삼류 연애소설의 한 구절처럼,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커다랗게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쿠로오는 멍멍한 반고리관을 타고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끼익-. 급제동으로 인해 차가 스키드마크를 그리며 미끄러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펑. 터지는 소리. 시야에 가득히 스러져내리는 빛. 차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맺힌 잔상이 선연했다. 땀방울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쿠로오는 팽팽하게 팽창한 흉부에 찬 숨을 급하게 내뱉었다.


 “무슨 생각해요?”

 “응?”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호흡이 가파르게 차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서늘한 감각이 가슴께를 질러들었다.


 “식은 땀도 흘리고.”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차츰 고르게 돌아가는 숨에 의아한 빛을 띄우던 눈이 거둬졌다. 손을 쥐었다 펴니 축축하게 땀이 배어나왔다. 옆에 앉은 이의 존재에 바짝 굳어 긴장한 몸이 탁 풀어졌다.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소리 좋네요.”

 “그치?”


 나부끼는 바람을 타고 말간 소리가 분분히 퍼졌다. 풍경이 흔들릴 때마다 하얀 도자기의 잔상이 아른아른 시야를 끌었다. 조금 앳된 얼굴의 츠키시마는 부드럽게 풀어진 입매를 끌어올려 웃으며 가만히 풍경을 내다보았다. 


 “츳키, 나중에 우리도 이런 집에서 살까? 이쯤에다가 커다란 창을 내고, 창가에 풍경도 여러개 달아놓고.”


 유백색 벽을 짚으며 히죽 웃어보이는 얼굴에 츠키시마는 큼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 같이 살자느니 두 사람이 함께일 미래를 그리는 사내가 좋아서. 새삼 되뇌인 사실에 얼굴이 홧홧해졌다.


 눈에 찬 노란 머리칼 아래로 발간 물이 들은 귀 끝이 퍽 예뻤다. 저도 모르게 소리내어 터진 웃음에 기분 좋은 파동이 몸의 들썩임을 따라 도처로 돌았다.

 하얀 목덜미를 내놓은 머리가 민망함에 흔들렸다. 츠키시마는 고개를 돌린 채 투명한 구 위로 곱다랗게 새겨진 연분홍빛 꽃잎을 바라보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에……. 자, 잠시만, 츳키, 방금 뭐라고…!”

 “이거랑 이거 하나씩 주세요.”


 한 번만 다시 해줘! 옆에서 칭얼대듯이 돌아오는 말을 덤덤히 무시하며 츠키시마는 풍경 두개를 계산했다. 그리고 하얀 종이봉지에 담긴 것 중 붉은 것을 건네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푸른 꽃잎이 새겨진 제 것과 꼭 같은 모양의 연분홍빛 풍경이 뺨으로 번졌다. 꽃잎보다도 짙게 찍힌 연지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뒷등을 보인 채 걸음을 뭉개던 츠키시마는 다시금 몸을 틀어 잰걸음을 했다. 그리고 무엇을 하려나 고개를 갸울이는 쿠로오의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던 입술이 부드럽게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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