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네코마 온리전(혈구모임) 에서 판매 예정인 쿠로츠키 트윈지 재(災灰滓再)의 샘플 페이지 입니다.






리베 (@sua_doll)





 담배를 태우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퍽 상쾌하지 못한 기상이었다. 츠키시마는 성인 남자 두 사람이 비좁게 들어맞는 침대에서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제멋대로 구겨진 시트는 반절 정도가 밀려서 간신히 침대 끝에 걸쳐져 머물고 있었다.


 “담배, 안에서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 그랬던가?”


 느른하게 풀어진 목소리가 실없이 웃었다. 가볍기 짝이 없는 웃음에 츠키시마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미간 위로 긴 획을 그었다. 잔뜩 찌푸려진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그저 연기를 내뱉는 일에 지성을 다했다. 희뿌연 연기가 녹진하게 뭉쳤다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공기 중으로 흩어진 것이 제 숨에도 뒤섞일걸 생각하니 속이 메스꺼웠다.


 미적지근한 관계가 끝나면 그는 언제나 하얀 필터를 입에 물었다. 하지 말라고 한게 벌써 일 년 째인데, 하여간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더 해봐야 소용 없단걸 알면서도 관계를 맺을 때마다 시비를 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다못해 창문이라도 여세요.”

 “그치만 밖은 추운걸?”


 그건 쿠로오씨 사정이고요. 짜증스럽게 덧붙인 츠키시마가 널브러진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쿠로오 라고 불린 남자는 잠시동안 마른 몸뚱이를 응시하다, 다시금 손가락에 걸친 담배에 입을 갖다 대었다. 또. 울컥 비어져 나오려던 목소리를 꾹 눌렀다. 슬 올라간 입매가 여기서 한 소리를 더 했다가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기운을 잔뜩 내풍기고 있었다.


 춘삼월의 경치는 제법 따사로왔지만 정작 날씨는 그리 포근하지 않았다. 두 번 샘내다간 꽃이 먼저 얼어 죽겠네. 나지막히 읊조리는 말에 츠키시마는 그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먼저 갈게요.”


 담배 한 개비가 채 다 타기도 전에 츠키시마는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가방을 둘러멨다. 아무렇게나 끼워넣은 셔츠의 깃이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쿠로오는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음이 한껏 묻어나는 몸짓에는 아무런 애정도, 성의도 느껴지지 않아서 츠키시마도 그저 고개를 까딱하고 말 뿐이었다.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하얀 셔츠가 말려 올라가고, 츠키시마는 익숙하게 안경을 벗었다.


 “불 끌까?”

 “새삼, 됐어요.”


  정사는 여느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유별나지 않은 애무. 감정은 일절 담기지 않은, 그렇지만 부드럽게 몸을 어루만지는 더운 손.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싸구려 선풍기 소리에 뒤섞인 건조한 신음이 허공에서 부서졌다.


 “넣어도 돼?”


 하여간, 단어를 고르는 센스는 예나 지금이나 지지리도 없었다. 새삼요. 이제와 뭘 그런걸 묻느냐고 덧붙이는 대신에 츠키시마는 하이얀 다리를 허리에 감았다. 다부진 몸이 움직이고 한순간 매트리스가 늘찐히 흔들렸다. 아. 목구멍에서부터 엷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머리를 감싸던 손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쿠로오는 상체를 들어 어깨를 가볍게 받쳐 안았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반지의 잔상이 아른아른 시선을 끌었다. 저를 만날 때에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던 반지. 아무래도 좋았다. 츠키시마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 없다는 듯 상체를 일으켜 입술을 맞부딪혔다. 소리가 새어나올 때마다 되는데로 짓씹어 불어터진 입술 사이로 가늘게 혈선이 늘어졌다. 쿠로오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은 채 입술을 떼었다. 금세 떨어진 온기에 츠키시마는 불만스레 허리를 뒤틀었다.








라젤 (@leesa1134)





 담뱃재의 음울한 향이 방 안을 맴돌았다. 가을과 겨울 사이, 슬슬 건조해졌을 법도 하건만 여전히 눅진거리는 숨결은 무겁게 가라앉아 바닥에 깔린 다다미 위로 진득히 스며들었다. 작은 방을 한가득 메운 냉기 어린 음습함은 뻑뻑 피워대는 담배의 열기에도 도무지 사그라들 기색이 없다.

 불 꺼진 적막 속 구석진 곳의 어둠은 미약한 숨소리마저 게걸스레 베어 물었다. 점점 해가 빨리 지네. 어둑한 정경을 둘러보다 실없는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창 밖으로 요란스러운 경적 소리가 몇 차례 울렸다. 뒤이어 굉장한 엔진음이 아득히 멀어진다.


 귀를 파고든 소음을 끝맺는 먹먹한 침묵을 곱씹으며, 쿠로오는 그 작은 공간이 오랫동안 물을 갈지 않은 어항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도쿄 한복판을 정처 없이 떠도는 어떤 유리된 공간. 그 속에 든 건 얇은 아가미를 들썩거리며 가냘픈 호흡을 이어나가는 금붕어다. 상한 지느러미를 흔들며 몇 번이고 같은 곳을 돌고, 물이 썩어 연약한 비늘이 마모되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체 안주하려는.


 속옷 한 장만 대충 걸친 채 낮은 침대 위로 걸터앉은 그는 작은 창을 채운 뿌연 먼지로 의미 없는 시선을 던졌다. 의식이 하염없이 침잠한다. 잠겨든다. 낡은 시간을 품은 기억이 범람했다. 높게 든 창을 타고 흘러 들어온 햇살 속을 유영하는 먼지와 그 아래에서 빛을 머금던 밝은 머리색, 뭐가 그리 불만인지 미묘하게 찌푸리고 있던 얼굴. 옹기종기 모여든 사내애들 사이에서도 한 뼘은 커 툭 튀어나온 머리꼭지가 유난히 눈에 띄던.


 아니지. 그가 원하는 것은 더 나중의 것이었다. 츠키시마의 웃는 낯을 떠올리는 거다. 자, 시간을 뒤로 돌려 보자. 일 년,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던 그날처럼 찡그리고 있던 얼굴. 이 년, 축축하게 뒤엉키던 숨결과 간절한 몸짓. 삼 년, 익숙한 감각을 좇아 흔들리던 몸뚱어리. 사 년, 저 무미건조한 눈빛. 시선.


 기어이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기억까지 들추어 아주 흙탕물을 만들고 나서야 쿠로오는 비죽 입꼬리를 말아 올리던 얼굴을 문득 떠올렸다. 그런데 그게 언제였더라. 일 년 전이었을까? 아니면 이 년은 되었나. 삼 년 전일 수도 있지. 그도 아니면 갓 만났을 무렵일까. 진탕 들쑤셔진 기억은 어떻게 쏘아보든 명료한 답을 일러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따금씩 어린 날이 남긴 자흔들을 마주해 감구할 때면 차마 막을 새도 없이 연거푸 쏟아져 내리는 것이 있다. 그리움이라 칭하기엔 애절하지 않고 미련이란 단어는 비참하다. 그리하여 이름 하나 붙이지 않은 그것을 속절없이 명치 위, 심장과 폐 사이 어딘가쯤에 한가득 채워 넣고 나면 꼭 속이 답답해져 쿠로오는 습관처럼 담배를 물곤 했다.


 후에 돌이켜 보면 그만큼 부질없는 행위도 없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몸에 밴 굴종은 구차하기 짝이 없어 아무런 알맹이도 담기지 않은 텅 빈 껍질을 물고 늘어질 따름이었다. 자해와 자위의 경계가 흐지부지하게 변색된 경계에서 그는 그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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