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켄 :: 소꿉친구





진단 메이커 :: 애석한 느낌, 소나기
*첫 만남 시기 날조 (켄마 초6, 쿠로 중1)





소꿉친구. 어릴 적부터 따라붙던 꼬리표 같은 그것은 얼핏 보았을 땐 잘 포장된 관계 같았으나 실상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관계를 정의 내려 버리는 것이었다. 만난 지 6년, 꼬리말이 붙은 지는 3년. 병아리의 노란 색이나 너른 풀밭의 연두빛 색감을 띄던 풋내나는 시작과는 달리, 질펀이 녹아들어 제 삶 안에서 커져버린 한 사람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며 뒤돌아 걸은 것이 또 3년. 해를 지날 수록 잘나빠진 낯짝을 드러내기 시작한 소년에게 동한 것은, 비단 사춘기 소녀들 만이 아니었다. 소꿉친구. 코즈메는 그 발음이 참 떫다고 생각했다.
낙인 처럼 찍힌 관계를 가슴 한켠에 여미고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잘게 찢어 넘겼다. 쿠로. 채 넘어가지 못한 말이 목울대에 질척하게 엉겨붙었다.

“응?”
“…비 오는데, 우산 있어…?”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을 두들겨대는 소나기가 시야에 들었다. 다행이야. 빗물에 흐너져내린 말이 진탕 녹아 목구멍 아래로 스러졌다.

“어라, 그러네? 아침에는 안온다더니…너는?”
“…있어.”

그럼 됐네. 사람 속도 모르고 벙긋한 웃음을 그려내는 낯이 얄미웠다. 들었던 고개를 수그리니 화면에는 커다랗게 ‘Game over’ 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쿠로오와 있을 때는 부활동 시간을 제하면 좀처럼 손에서 게임기를 놓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언제부터였더라. 아마 열 다섯의 끝자락 부터. 아니, 어쩌면 열 네살, 열 세살의 앳되지만 마디 진 손을 잡고부터.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그 시선의 끝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네가 있었다. 알아차린 사실이 못내 버거워서, 코즈메는 좁다란 인공 화면에 진심을 묻었다.
-그런다고 꺼질 마음이 아니었는데도. 직면하기 거북한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종례시간이 다 가고도,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제 몸집을 키워댔다. 후두둑. 쏟아지는 빗줄기가 거셌다. 작은 비닐 조각 아래에 한창 때의 남고생 둘이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던 건지, 퍼붓는 낙수에 한쪽 어깨가 젖어들었다. 팔에 감겨드는 찝찝한 감각 보다도 옆에 선 으레 그 소꿉친구의 존재가 더 거슬렸다. 걸을 때마다 닿는 어깨며 손 따위가 불에 댄 듯 더웠다.
진흙에 젖은 신발의 밑창이 직직 늘어졌다. 질척하게 엉겨붙는 모양새가 퍽 제 속을 닮은 듯 하여 조소가 샜다.

“아, 다 왔다.”

점점 수그러드는 고개를 운동화의 앞코에 고정하고 간신히 돌아오는 말을 받아치는데, 문득 옆을 덥히던 열기가 가셨다. 아, 응. 가볍게 손을 흔들고 돌아선 뒷모습이 시야를 가렸다. 단단히 벌어진 어깻죽지에 채 다듬어지지 못한 감정이 울컥 올랐다.
홧홧한 열상이 속을 긁었다. 더운 기가 가신 자리에는 열창 대신 서늘한 오한이 들었다. 서운하다, 얄밉다, 너무하다. 한 단어로 형용하기 힘들 만큼 겹겹이 쌓이는 감정이 건조한 가슴께로 밀려들었다.

좋아해.

속을 드러낸 자리에 토기가 일었다. 메스꺼워. 한 사람이 빠져나간 공간 만큼 넓다래진 여백이 고까워서, 퍼붓는 장대비에 몸을 던졌다. 살이 아릴 정도로 쏟아지는 빗물보다도 감내하기 힘든 막막함이 빈 공간을 채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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