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오이 :: 고백



소재멘트 :: '좋아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느릿하게 틀어지던 이와이즈미의 고개가 멈추고, 시선이 멎은 자리에 퍽 익숙한 인영이 담겼다. 대형 스크린 너머로 시야에 들은 얼굴이 불현듯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점철된 기억의 끄트머리에 다달아서는 벌어진 입에서 아, 하고 탄성과도 비슷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게 아마, 8년 전이었던가. 잔잔한 수면 위로 잔물결처럼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패악스러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보다도 더 절절하게 끓어오르던 제 십대의 한 철을 타고도는 열화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은 이름자, 오이카와 토오루. 친구라니, 우습지도 않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볼 때마다 시커먼 마음 한켠에 진심을 구겨 넣고 차마 뱉지 못한 감정을 삭였다. 늘어붙어 성긴 마음에 난 생채기가 쓰렸다. 처절하게 속내를 숨기고 앓아넘긴 지가 어느덧 칠 년. 스무살이 되던 해의 졸업식 날, 이와이즈미는 기어코 수차례 제 속에서 누르고 짓씹어 퍼렇게 멍울진 말을 토해냈다.

좋아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힐난이라도 하듯이, 말이 지나간 자리에 열상이 일었다. 곤란하다는 기색을 고스란히 내비치는 소꿉친구의 얼굴에 그제서야 어찔한 기분이 들었다.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살게 굳어진 얼굴이 그만큼 이와이즈미를 살라내었다. 돌아올 모를 말에 지레 겁을 집어 먹고, 어색한 웃음을 그리는 입매가 채 떨어지기 전에 이와이즈미는 자리를 뛰쳐나왔다. 이와쨩! 뒤에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돌아서 여느때보다도 다급하게 오이카와를 피했다. 그리고 그게, 이와이즈미 하지메와 오이카와 토오루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예정되어있던 이사. 이와이즈미는 번호를 바꾸고 새로운 메일 주소를 만들며, 들끓는 애정과 함께 오이카와 토오루의 번호가 저장된 핸드폰을 서랍 깊숙히 욱여넣었다. 어차피 외우고 있는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었겠냐마는, 그만큼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잊는데에 필사적이었다. 이후로 어떤 연락이 왔을지, 연락이 오긴 왔는지도 알지 못한 채 한 달, 두 달, 1년, 2년이 지나 일상에 치이고 닳아빠진 기억이 무뎌질 때 즈음, 다시금 눈길을 잡아챈 익숙한 낯짝이 잔잔한 수면위로 돌을 집어 던졌다. 이와이즈미는 차마 돌리지 못한 눈을 빠르게 바뀌어대는 화면에 고정했다. 가슴 한 켠이 먹먹이 차올랐다. 희미하게 번지던 열상이 선명히 드러났다. 잘나빠진 건 여전해가지고. 이와이즈미가 아닌 에이스에게 토스를 올리고, 화면을 향해 손을 저어보이며 으레 그 벙긋한 웃음을 그리는 낯이 한결같이도 잘났다.

두려워서 그랬다느니 하며 외면한 마음은 사실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했었다. 고백을 받아줘, 그럼? 어쩌다 운 좋게 사귀게 되었대도, 그 다음은? 지금까지는 학생 때의 부활동으로 오이카와의 주춧돌이 되는 데에 그쳤지만, 대학에 가서도 오이카와의 토스를 받을 자격은 자신에게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배구에 특출나달 재능이 없었고, 스스로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우시지마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최고로 만들어 줄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기실 아주 오래전부터 자각한 사실이었음에도 기어코 오이카와의 디딤돌을 자처했던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오이카와의 곁을 지킬 구실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배구는 그만둘거야.’

봄고전의 쓰린 패전의 날, 앞으로도 시간은 많다며 당차게 말하던 너에게 오랜시간 눌러두었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다가온 고교 마지막 날, 그보다도 더 오랜 시간 질척하게 엉겨붙어 있던 언사를 말했다.

다시 한 번 네 곁에 남을 구실이 필요했어. 친구라는 이름이 싫어서 오이카와 토오루의 에이스라는 이름을 빌려왔다. 더 이상 그 이름으로도 남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어찌 보면 충동적이면서도 당연한 수순대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품었던 연정을 꺼내들었다. 그렇지만 만약 그 때 네가 고백을 받았더라면, 나는 다시 모른 척 네 곁을 지키고 있을 수 있었을까. 제대로 된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서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은, 네게서 어떤 대답이 돌아와도 나는 웃으며 그러자 할 자신이 없었어. 더 높이, 학창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멀리 날 오이카와에게 결국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어떤 식으로건 걸림돌이 될 터였다. 친구.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거면 됐을텐데. 왜, 난. 울음을 삼킨 눈가가 시큰하게 달아올랐다. 처절하게 앓아 넘긴 지난 날의 기억이 희게 질린 가슴께에 밀려들었다. 북받쳐 오른 감정이 왈칵, 넘쳤다. 결국 팔 년이 지나고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잊지 못했다. 무겁게 내려앉는 막연함에 흐려진 시야를 벅벅 문지르고 고개를 돌렸다.



“이와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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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표 2번, 이와오이.
중반부터 멘탈이 와장창 나서 좀 급히 마무리짓느라 수정이 엉망진창ㅠ 시험 끝나고 꼭 다시 건드릴겁니다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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