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멘트 :: '조금 아픈 것 같아, 그뿐이야'
하나하나병 :: 혈관에서 꽃이 자라, 사랑을 받으면 받을 수록 악화되는 병.



마츠츠키 :: ハナハナ病




희었던 나무가 군데군데에 녹빛을 피어낼 때 즈음, 츠키시마 케이는 마츠카와 잇세이에게 이별을 고했다. 별다른 수식어나 미사여구 없이, 꼭 두 사람이 사귈 적 마냥 담백한 별사는 마츠카와로 하여금 상황을 이해하기 버겁게 만들었다. 둔해진 머리로 해엽처럼 생각이 들어차 올랐다. 우리, 그만해요. 마치 밥을 먹었냐고 물을 때처럼 평이한 어조로, 권태롭다 못해 지루한 목소리가 귓등성이를 어찔하게 울렸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알알했다.

마츠카와는 멍해진 머리로 츠키시마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그 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별이 면전에 놓인 상황임에도, 맞은편의 연인과 같이 덤덤한 얼굴을 한 마츠카와가 물었다. 왜. 츠키시마는 눈 하나 깜작이지 않고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것인 양 능하게 말을 받았다.

"평생 갈 것도 아니었고,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해서요."

여지껏 사귀었던 시간들이 별 것 아니었단 것처럼, 무더위보다도 후터분했던 관계는 사실 한순간의 치기에 불과했다는 듯한 츠키시마의 태도에 슬그머니 열화가 치밀었다. 그게 다야? 따져 묻는 어투에도 츠키시마는 태연자약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익숙했던 단정한 말씨가 유난히도 귀에 거슬려서, 마츠카와는 그만 손을 내저었다.

“그래, 그만하자.”

그걸로 끝이었다. 일 년이 조금 넘을까 하던 관계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허무하게, 그리고 이르게 종장을 보였다. 무심하게 돌아서는 시선이 츠키시마의 폐부를 깊숙히 살라내었다.


*

이걸로 됐어. 츠키시마는 제 안에 진득히 눌러두었던 감정을 잘게 들이삼켰다. 이거면 된거야. 먹먹한 숨을 토해내니 바스라진 꽃내음이 코끝 언저리를 머물다 흩어진다. 츠키시마는 마츠카와의 반듯한 뒷모습을 온 시야로 좇았다. 멀어지던 검은 점이 이윽고 시야에서 사라지자, 말간 회녹색 눈동자에 꼭 한 사람의 인영이 담겼다.

고즈넉이 가라앉아 파리하게 꺼져가는 숨에도 끈덕지게 늘어붙은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아서, 그 사실이 못내 츠키시마를 서럽게 만들었다. 겨우 붙은 숨으로 끝을 말하고도 뚝뚝 떨어지는 미련이 성글게 말라붙었다.

짓물린 꽃잎이 잇새를 비집고 나와 역류해 오르고, 타고도는 핏물에 섞인 여린 잎은 기어이 혈류를 끊어놓았다. 마츠카와를 만나러 가기까지 울컥이던 감정은 사실 제 것이 아니었다는 양 비어버린 한 켠이 쓰렸다. 마츠카와씨.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삭이느라 새된 숨을 몰아쉬었다. 까슬해진 입안을 타고 구르는 발음이 혀 끝을 저몄다.

조금 아픈 것 같아, 그뿐이야.

말라붙은 이름 일곱 자가 성긴 마음에 녹진히 스몄다.


잘 빚어진 얼굴을 틀어 다짜고짜 입을 맞대고, 그에 화를 내면 너털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능청이 좋았다. 가끔은 너무 안연해서 되레 소리를 친 저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그렇지만 그 부끄럽다는 감정 마저도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느껴버릴 만큼. 츠키시마 케이는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마츠카와 잇세이에게 머리 끝까지 잠겨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당신을 볼걸.
유려히 찢어진 시선의 끝이 저였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알아차린 둔함이 원망스러웠다. 이토록 제 안에 서릴 줄을 몰랐던 열일곱의 시작부터가 잘못이었을지도. 이제와 후회한들 이미 지나친 서제임에도, 츠키시마는 가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혹시 이랬더라면,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미련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는 말이 이보다 들어맞을 수도 없었다.

혹한 추위가 이어지는 겨울날에도 들끓는 애정이 더 너르던 지난 한 계절을 되짚어나갔다. 점철된 기억의 끄트머리에 다달아서는 별안간 왈칵, 눈물이 찼다.
머리가 둔중하게 울렸다. 흑백으로 죽어버린 시야에 익숙한 이의 잔상이 비쳤다. 자조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좋아해요. 내가, 아직 당신을 좋아해.

마른 입술을 짓씹었다. 폐부를 비집고 나부껴 오르는 향에 역정이 났다. 다 드러내고도 아직 한가득 남은 연정이 북받쳐 올랐다. 차라리 상사병이었다면 나았을 것을. 기실 츠키시마에게 깊다랗게 자리잡은 그것은 츠키시마가 마츠카와를 눈에 담는 것 조차도 허락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갈 곳 없는 원망을 끝없이 되내이며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 감았다. 새까만 시야에 곧이 박힌 잔상이 지독히도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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