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하이큐!! 통합 온리전 TSA 에서 판매 되었던 쿠로츠키 초혼(招魂)의 샘플 페이지 입니다.








 해가 하늘의 서편에 걸릴 무렵 쿠로오는 뻑뻑한 눈을 부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모처럼 원없이 잔 주말임에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사람처럼 몸이 축축 늘어졌다. 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젖은 냄새.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가르고 우중충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딸랑-. 말간 풍경 소리가 빗소리에 뒤섞여 귓등성이를 타고 돌았다. 거실 벽면의 큰 창을 열자 선명한 녹색 이파리가 빗줄기에 흐너져내리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흙이며 부옇게 물기 서린 창틀이 눈에 들었다. 습한 공기 덕에 귓가에 크게 울리는 풍경소리를 뒤로 한 채 쿠로오는 달력의 날짜를 짚었다. 8월 17일. 빨간 색연필로 여러차례 죽죽 그린 동그라미가 잔상처럼 시야에 아른거렸다.


 “축제구나-.”


 어제 저녁나절 부터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아 바싹 마른 입술을 가까스로 벌렸다. 새되게 갈라진 목소리의 끝이 조금 뒤집혔다.


 언제부터 켜져 있었던건지 모르겠는 라디오에서는 기상 캐스터가 오늘의 날씨를 말하고 있었다. 비로 인한 교통 체증이 심하다는 말 뒤로 4시 즈음 부터 비가 그칠 거라는 경쾌한 어조가 이어졌다.


 쿠로오는 라디오의 전원 버튼을 돌려 놓으며 커다란 컵으로 커피를 마셨다. 상자에서 막 꺼낸 짙은 남색의 유카타는 방충제 냄새가 났다. 반쯤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키고 유카타에 몸을 끼워 넣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두시를 조금 넘겨가는 시간임에도 바깥은 마치 귀신이 나올 것처럼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오늘 같은 날에 축제를 오는 사람이 있으려나.”


 말을 그리 하면서도 약속을 취소할 기색은 없었다. 쿠로오는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빈 컵을 가볍게 물로 헹궜다. 거치대에 컵을 놓고 거실 소파에 걸터 앉자 창 밖으로 코를 화단에 묻은 채 킁킁대는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빗줄기가 제법 거셌지만 고양이는 개의치 않았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비 오는 날에 고양이가 꽃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축제에 비하면 화단은 무난한가.


 쿠로오는 시답잖은 생각을 머리 한 구석으로 욱여넣으며 널어놓은 오비를 들었다. 잘 마른 천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설프게 모양새를 잡은 유카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오비를 여몄다. 묶인 외견에 서투른 감이 있었으나 거동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문득 조금 후에 쏟아질 잔소리가 귓가를 앵앵대는 듯했다.


 뭔가 더 정리할게 있던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대던 쿠로오의 시야에 텅 빈 어항이 들었다. 물결치는 무늬가 곱다란 둥근 어항은 깨끗하게 정리가 된 채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전에 들어있었을 색색의 자갈이며 물고기 따위가 눈앞을 어른거렸다. 꼬리가 주황색인 금붕어가 들어가면 좋을 지도 모르겠다며 쿠로오는 짧게 생각을 끊었다.


 남은 시간은 삼십 분 넘짓. 지금 나가면 오분 정도 일찍 도착할 듯 싶었다. 쿠로오는 아직 그치지 않은 비를 내다보며 비닐 우산 하나와 지갑을 챙겨들었다. 모처럼의 데이트이니 제가 기다릴지언정 기다리게 할 마음은 없었다.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하늘을 가득히 수놓은 불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각조각 부서져내려 새카만 수면 위를 유영했다. 여러차례 연이어 터지는 불꽃이 밤의 군청에 자욱자욱 색을 더했다. 이런걸 두고 절경이라고 하는 거겠지. 언젠가 읽었던 삼류 연애소설의 한 구절처럼,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커다랗게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쿠로오는 멍멍한 반고리관을 타고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끼익-. 급제동으로 인해 차가 스키드마크를 그리며 미끄러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펑. 터지는 소리. 시야에 가득히 스러져내리는 빛. 차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맺힌 잔상이 선연했다. 땀방울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쿠로오는 팽팽하게 팽창한 흉부에 찬 숨을 급하게 내뱉었다.


 “무슨 생각해요?”

 “응?”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호흡이 가파르게 차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서늘한 감각이 가슴께를 질러들었다.


 “식은 땀도 흘리고.”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차츰 고르게 돌아가는 숨에 의아한 빛을 띄우던 눈이 거둬졌다. 손을 쥐었다 펴니 축축하게 땀이 배어나왔다. 옆에 앉은 이의 존재에 바짝 굳어 긴장한 몸이 탁 풀어졌다.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소리 좋네요.”

 “그치?”


 나부끼는 바람을 타고 말간 소리가 분분히 퍼졌다. 풍경이 흔들릴 때마다 하얀 도자기의 잔상이 아른아른 시야를 끌었다. 조금 앳된 얼굴의 츠키시마는 부드럽게 풀어진 입매를 끌어올려 웃으며 가만히 풍경을 내다보았다. 


 “츳키, 나중에 우리도 이런 집에서 살까? 이쯤에다가 커다란 창을 내고, 창가에 풍경도 여러개 달아놓고.”


 유백색 벽을 짚으며 히죽 웃어보이는 얼굴에 츠키시마는 큼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 같이 살자느니 두 사람이 함께일 미래를 그리는 사내가 좋아서. 새삼 되뇌인 사실에 얼굴이 홧홧해졌다.


 눈에 찬 노란 머리칼 아래로 발간 물이 들은 귀 끝이 퍽 예뻤다. 저도 모르게 소리내어 터진 웃음에 기분 좋은 파동이 몸의 들썩임을 따라 도처로 돌았다.

 하얀 목덜미를 내놓은 머리가 민망함에 흔들렸다. 츠키시마는 고개를 돌린 채 투명한 구 위로 곱다랗게 새겨진 연분홍빛 꽃잎을 바라보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에……. 자, 잠시만, 츳키, 방금 뭐라고…!”

 “이거랑 이거 하나씩 주세요.”


 한 번만 다시 해줘! 옆에서 칭얼대듯이 돌아오는 말을 덤덤히 무시하며 츠키시마는 풍경 두개를 계산했다. 그리고 하얀 종이봉지에 담긴 것 중 붉은 것을 건네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푸른 꽃잎이 새겨진 제 것과 꼭 같은 모양의 연분홍빛 풍경이 뺨으로 번졌다. 꽃잎보다도 짙게 찍힌 연지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뒷등을 보인 채 걸음을 뭉개던 츠키시마는 다시금 몸을 틀어 잰걸음을 했다. 그리고 무엇을 하려나 고개를 갸울이는 쿠로오의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던 입술이 부드럽게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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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츠키 :: 무제





순자님 달성표 보상글


소재멘트 :: 김경미_다정이 나를





 쿠로오 테츠로는 엷게 피어오르는 연기의 모양새를 내다보다, 다시금 연기의 근원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 입에 물은 종잇조각 만큼이나 하얀 얼굴이 느른하게 풀어져있었다. 츠키시마 케이가 담배를 피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씁쓸하고 매캐한 담배보다는 분홍색 딸기 사탕이 더 어울릴법한 사내였다. 단 걸 먹으면 체취도 달아지는 건지, 쇼트케이크며 밀크티 따위의 달큰한 체향이 담배연기 사이에서 이질적인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굳이 담배를 핀다면 내 쪽이 더 어울리지 않나. 어딘지 모르게 어긋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 츠키시마가 담배를 피는 것을 봤을 땐, 봐서는 안될 것을 봐버린 기분에 마치 죄를 지은 듯도 했다. 빨간 립스틱, 하얀 담배. 그럼에도 쿠로오는 연기를 뱉는 입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입술이 닿은 부분에 붉게 루즈 자국이 남았다. 쿠로오는 그 모습이 퍽 선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없을 때에는 한참이나 담배를 물고 있으면서, 쿠로오를 발견한 츠키시마는 막 물었던 장초를 툭 떨궈 발로 비벼 껐다. 쿠로오는 그런 몸짓에서 다정을 느꼈다.


 다정이 나를 죽일 것 같아. 이따금씩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것이 툭 내뱉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츠키시마는 미간을 옅게 찌푸리며 입에 물린 필터를 짓씹었다. 얄쌍한 손에 들린 지포 라이터를 몇 번씩이나 깔짝이던 츠키시마는 달칵, 소리를 내며 뚜껑을 닫았다.


 거 봐, 지금도. 피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주제에 불도 붙이지 못하고 있잖아.


 “시답잖은 소리나 할거면 얼른 가요. 장사 방해돼요.”

 “매출 올려주러 왔잖아, 쿠로오씨는 손님이라고?”


 손님. 제가 말하고도 마음 한 구석이 뜨끔했다. 더운 기운이 머릿속을 마구 헛돌았다. 혹시 지금 표정이 이상하지는 않을까. 마음 깊숙히에 작게 접어 숨겨둔 염원을 들킬까 겁이 난 목소리의 끝이 조금 뒤집혔다.


 츠키시마가 저를 빤히 바라볼 때면, 쿠로오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가죽을 벗겨내고 표피를 저며 들끓는 열화를 꺼내놓을 것만 같았다.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이 가늘게 뜬 눈매가 야살스럽게 휘어졌다.


 “들어가 있어요. 금방 갈게요.”


 마담한테 얘기해두는 거 잊지 말고요. 덧붙이는 말에 엷은 비성이 섞였다. 츠키시마가 가식으로 엮은 가면을 덮어쓸 때면, 쿠로오는 새삼 느껴지는 거리감에 입술을 물었다.


 돈을 주고 하룻밤 어치의 웃음을 사는 것이 다였다. 제가 아는 것은 가게에서의 츠키시마가 다인데, 조금 더 안다고 해봐야 상냥한 웃음 뒤의 까칠함이 전부일지인데. 그런데도. 예명과 같은 성씨를 제하면 이름도, 사는 곳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츠키시마에게 쿠로오는 뼈가 시릴 만큼 잠겨있었다. 네 존재가 나를 채웠듯, 나도 너를 조금쯤은 채우고 있을까. 문득, 서글픔이 밀려왔다.


 한낱 창기일 뿐이다. 기껏해야 값이 조금 나가는 창기일 뿐이야. 수차례 되뇌인 말을 다시금 머릿속에 새기며, 쿠로오는 주머니 속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 자국이 패였던 네번째 손가락이 매끈하게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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